정치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있는가?

라인란트 2024. 2. 28. 02:56
제목을 좀 도발적으로 썼는데, 사실 언론에서 하도 '민주 없는 민주당'이라는 비아냥을 많이 봤던 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는 노이로제가 걸릴 만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저런 식의 표현은 보통 '주류' 친명계와 '팬덤' '개딸'들이 비주류 비명계의 의견을 탄압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곁들여진다. 나는 전혀 다른 관점을 주장하고 싶다. 오히려 언론에서 '개딸'로 폄훼되는 민주당의 주 지지층이야말로 민주당의 다수 정치인들에게 진정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여기저기서 지겹도록 언급되어서 이제는 많은 이들이 식상하게 여길지도 모를 대한민국 헌법 제1조제2항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 문장은 민주주의의 기본 명제를 천명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수많은 유무형의 권력을 갖지만, 그 권력은 주권의 '진짜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며, 언제든지 국민은 그 권력을 재부여할지, 회수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민주당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갖는 권력은 어디까지나 원래 지역구 당원과 유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며, 그들을 평가하고 심판하여 권력을 계속 맡겨둘지, 회수할 권한을 갖는 주체는 마찬가지로 오직 당원과 유권자이다. 나는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이 이 기본 명제를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당원을 무시하는 '가결파'들

나는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민주당 의원들 절대다수가 지역 당원과 유권자를 배신했으며 비겁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는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투표해준 유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 자신이 떳떳하다면, 그 선택과 이유를 주권자인 유권자에게 소상하게 밝히고 그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그들 스스로도 자신이 자신에게 투표해준 사람들의 뜻과 다르게 행동했으며, 그들이 자신의 행위를 좋게 평가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구 당원들이 다른 지역구 당원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의원이 그들을 대변해서 행동한 것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가령 대표적인 반이재명계 의원 중 하나인 윤영찬 의원의 지역구인 성남시 중원구는 재선 성남시장을 거치며 전국구 정치인으로 부상한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이 지역구 당원들이 다른 지역구 당원들보다 이재명을 유난히 싫어하며, 그것이 윤영찬 의원의 표결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그 반대에 비해 훨씬 낮아 보인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비명계 의원들이 자신이 대리해야 할 지역구 당원과 유권자의 뜻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면, 그 위임받은 권력이 회수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지극히 정당한 절차이다. 단, 그 결정이 당원과 유권자 스스로 내린 것이라면 말이다.

'시스템 공천'의 반민주성

하위 10% 분류 문제로 민주당이 뒤숭숭하다. 정량화된 의정활동 지표로 하위권인 의원들을 걸러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은 언뜻 의원들이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게 만들기 위한 좋은 유인책으로 보인다. 그런데 의정활동을 '잘' 했는지는 무슨 지표로 평가할 수 있는가? 가령 법안을 많이 발의하면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한 것인가? 그 법안 중에 졸속으로 만든 저질 법안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은 일을 잘 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법안이고 무엇이 나쁜 법안인지는 누가 평가하는가? 가령 최근에 여야간에 쟁점이 되었던 '중대재해법의 50인 이하 사업장 적용 2년 유예'를 기업가들은 꼭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악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법을 발의한 의원에게 가산점을 줘야 할지 말지를 누가 '객관적'으로 정할 수 있는가?

정치는 수학처럼 참과 거짓을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정량적으로 점수를 매겨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영역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의원들을 평가해야 하는가?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정치인의 권력은 주권자 국민이 정치인을 선택해 잠시 위임하는 것이다. 정치인의 의정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그를 대리인으로 선임한 국민 자신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떤 의원이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평가할 권한이 있는 것은 오직 당원과 유권자 뿐이다. 그들이 자기 지역구 의원이 '일을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감점 없이 경선에 부쳐지더라도 유권자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만약 지역구 당원과 유권자 다수가 그 의원을 재신임했는데도 감점 때문에 결과가 뒤바뀐다면, 그것은 주권자인 당원과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잘못된 공천이다. 불투명한 기준으로 '하위 10%'를 선정해 사실상 뒤집기 불가능한 수준의 30% 감점을 사전에 먹이고 시작하는 것은 당원과 국민으로 하여금 그 의원을 평가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이재명 대표를 위한 변명 한 가지를 집어넣자면,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 제도 대다수는 이재명 대표가 처음 만든 게 아니라 과거 문재인 대표 시절에 친문계의 주도로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은 지적해야겠다. 지금 민주당 공천에 가장 반발하고 있는 친문계 의원들 역시 자신들이 주류였던 시절에는 이 제도를 옹호하기 급급했다는 점도.

계파를 가리지 않는 엘리트주의

위에서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비명계 의원들이 당원과 지지자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소위 비명계 의원들이 당원의 뜻에 반하여 그들에게서 위임받은 주권을 멋대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공정한 경선에 맡기더라도 그들은 알아서 당원에게 심판받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원의 재신임을 받는다고 하면, 그것은 그 의원이 다른 측면에서 그것을 상쇄할 만큼 당원들을 만족시켰다는 뜻이므로, 그 의사는 존중받아야 한다.

불행히도 나는 지금 당장은 당원들과 한 편인 것처럼 보이는 이재명 지도부 또한 당원을 믿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지몽매한 당원과 유권자들에게 결정을 전적으로 맡긴다면 그들이 단순히 현역이라는 이유로 가결파 비명계 의원들을 줄줄이 살려주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알아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시스템 공천'이라는 미명 하에 인위적인 개입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때로는 사전에 링에서 치워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당원과 지지자에 대한 불신과 무시는 친명 비명을 막론하고 민주당 내 상당수가 공유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지금 비주류로 전락한 친문계도 자신들이 당원 다수의 지지를 받는 주류였던 시절에는 '당원의 뜻'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들었다. (예를 들어 지금 소위 '개딸'에 열심히 맞서고 있는 홍영표 의원은 친문계가 민주당의 주류였던 시절에는 소위 '강성 당원'들을 옹호하기 바빴다.) 지금 주류인 친명계도 아마 민주당 내 역학구도가 다시 바뀌어 비주류로 밀려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강성 팬덤과 거리를 둬야 한다.' 따위 소리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입버릇처럼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들 상당수가 언제든지 주권자 국민이 자신에게서 권력을 회수할 수 있다고 진정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친명에게도, 친문에게도, 당원과 유권자는 우리 편일때는 당의 뿌리이자 진짜 주인이었다가 우리 편이 아닐 때는 폭력적 강성 팬덤으로 깎아내려도 되는 존재일 뿐이다.

'명문정당'의 허위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는 의미

최근 친문과 친명이 원팀으로 민주당을 이끌어나가자는 '명문(明文) 정당'이라는 조어가 쓰이곤 했다. 이런 말을 억지로 만드는 것 자체가 실상 둘이 원팀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가 원팀으로서 윤한 정부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친문계 인사들을 속으로 전혀 곱게 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최근의 일련의 흐름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속으로는 그럴 것이다.

이렇다보니 '친명'과 '친문'을 반의어처럼 쓰지만 사실 문재인 정부 때는 친문으로 분류됐다가 최근에는 친명으로 분류되는 의원들도 간간이 있다. 정청래 의원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는 문재인 지도부 시절에도 이재명 지도부 시절에도 당원과 지지층의 정서에 부합하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고, 대조적으로 언론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곤 했다.

한때 나는 이런 의원들을 그때그때 권력을 쫓아다니는 비겁한 박쥐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지지층이 듣기 좋아하는 사탕발림만 그때그때 하는 인기영합주의자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여전히 정청래 의원의 거친 발언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속내가 어떻든 당의 주인이자, 자신들에게 권력을 위임해준 주권자인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을 존중하고 따라온 점은 높이 평가해줄 만한 영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