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소선거구제에 대한 몰이해가 낳는 '국민의힘 170석'론

라인란트 2024. 3. 1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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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민의힘의 총선에서의 우세를 기정사실화하는 '선거 전문가'들이 매스컴을 자주 타곤 한다. '국민의힘 170석'을 수시로 호언장담하는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이 대표적이다. 엄 소장의 예측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룬 한국경제 기사를 보면 위와 같이 그래프까지 삽입하면서 마치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예측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엄 소장이 나름대로 우리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비공개 데이터에 기반해 예측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일단 기사만 봐서는 분석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데이터가 근거로 제시되지 않는 '감'에 근거한 예측은 나도 할 수 있다.

이재명 대 한동훈 대선을 하는 것이라면야 전국 지지율을 보면 누구든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국회의 의석 대다수는 소선거구제에 근거해 배분된다. 254개 지역구에 다 다른 후보가 나와서 경쟁하고, 그 결과의 총합이 각 당의 의석이다. 달리 말해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총선 대결은 이재명과 한동훈의 정면 대결이 아니라 254개 지역구에 나서는 후보들 간의 대결이다. 총선 '의석 수'를 예측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이것을 이해한다는 전제 하에서 유효한 예측이다.

국민의힘 총선 승리의 방정식

그렇다면 소선거구제 하에서, 엄 소장을 비롯한 '선거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대로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완승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구들을 공략해야 하는가? 편의상 20대 대선(47.83% vs 48.56%)의 결과를 그대로 총선 선거구에 대입해 보겠다.
알아보기 편하도록 21대 총선과 비교해 승패가 바뀐 지역구들을 진한 색으로 표시했다. 위 시나리오에서 국민의힘은 지역구 133석,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121석을 얻는다. 대선 득표율이 그대로 비례대표 득표율로 이어졌다고 하면 비례대표는 23:23으로 똑같이 나눠가지므로 국민의힘은 156석으로 과반을 조금 넘길 수 있다. 물론, 소선거구제 총선에서는 인물 경쟁력을 비롯해 다양한 변수가 개입하므로 실제로 2022년 3월 9일에 대선 대신 총선을 치렀다면 이 스코어가 나왔을지는 알 수 없다.

가장 최근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패했지만,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승리한 지역구를 모아보면 아래와 같다.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더 많이 찍은 지역들이 대거 변심할 가능성보다는, 하술하는 지역들에서 국민의힘이 의석을 빼앗아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높을 것이다. 고로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이 지역구 대부분을 석권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된다. 판단을 도와드리기 위해 작성 시점 각 지역구의 최신 여론조사가 있는 경우 링크하겠다.

서울 (14석): 종로, 중·성동 갑, 중·성동 을, 광진 을, 동대문 갑, 동대문 을, 서대문 갑, 마포 갑, 강서 을, 양천 갑, 영등포 갑, 영등포 을, 동작 갑, 동작 을
인천 (3석): 동·미추홀 갑, 연수 갑, 연수 을
경기 (7석): 수원 정, 성남 분당 을, 안양 동안 을, 하남 갑, 의왕·과천, 용인 병, 용인 정
강원 (3석): 춘천·철원·화천·양구 갑, 원주 갑, 원주 을
대전 (6석): 동, 중, 서 갑, 서 을, 유성 갑, 대덕
충북 (3석): 청주 서원, 청주 흥덕, 증평·진천·음성
충남 (3석): 천안 갑, 당진, 논산·계룡·금산
부산 (2석): 북 갑, 사하 갑
경남 (3석): 양산 을, 김해 갑, 김해 을

2022년 vs 2024년

당연히 위에서 본 대선 결과를 그대로 총선에 대입해서는 안된다. 앞서 언급했듯 후보가 254개 선거구마다 모두 다르며, 다자구도인 선거구들도 있고, 무엇보다 각 당의 지지율이 2년간 그대로가 아니다. 2년 전과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 일단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최근 한창 저조할 때보다는 조금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라고 보기 어렵다. 정권 심판론이 국정 안정론을 웃돌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2022년 당시와 비교해 국민의힘에 불리한 요소이다.
  • 반면 국민의힘 입장에서 더 나아진 부분도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2년 동안 좀 더 진행되어 '사법 리스크'가 더 짙어졌으며, 비명계와의 갈등 등으로 이미지 소모가 컸다. 반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최근에야 정계에 본격 뛰어들어 비교적 부정적 이미지가 덜하다. 이 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우고 '대선 전초전'으로 인식시킨다면 국민의힘이 유리할 수도 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2027년까지지 2024년까지냐는 질문은 하지 않을 수 없다.
  • 과반 정당을 가를 주 전장은 결국 수도권이다. 수도권에서 국민의힘은 2012-2016-2020 세 번의 총선에서 3연패를 기록했으며, 그 사이 많은 인적 자원들이 지역구를 떠났고, 지역조직은 위축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무게감 있는 인사들도 상당수가 지난 지선에서 단체장으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동원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의 양과 질에 있어서는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민주당이 앞설 가능성이 크다.
  • 국민의힘은 현역 대부분이 최소 경선 기회는 얻는 '로우 리스크-로우 리턴'식의 공천을 한 반면, 민주당 공천은 이래저래 잡음이 많았고, 내려꽂기식 전략공천도 잦았다. 이러한 과정이 좁게는 지역조직, 넓게는 지지자들을 분열시키고 피로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이 모든 요소를 염두에 두고, 실제 여론조사로 확인되는 데이터들까지 고려한다면 보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위 선거 전문가들이 내부적으로 이런 걸 다 받아보고 있는지야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언론 보도로 나오는 분석에서 그것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근거를 찾아서

그렇다면 과연 국민의힘 완승을 호언장담하는 선거 전문가들은 정확히 어느 지역구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거라고 예측하는 것일까? 대부분은 구체적인 설명 없이 단순히 '몇 석 예상' 정도를 지르는 데서 그치지만, 서두에서 언급한 엄경영 소장의 분석이 포함된 한국경제 기사가 그나마 그 힌트를 주고 있다.

대선 결과를 그대로 넣으면 국민의힘이 156석을 얻는다고 했으니, 엄 소장의 말대로 국민의힘 170석이 나오려면 이재명 후보가 이겼던 곳 14석까지도 빼앗아와야 한다. 그게 어디어디인지 엄 소장의 예측을 하나하나 따라가보자.

48석이 걸린 서울 판세는 다소 국민의힘 우세다. 국민의힘은 초기 열세를 극복하고 강남 3구 8석, 한강벨트 15석 등에서 앞서가고 있다. 또한 종로, 동대문, 서대문 등에서도 선전 가능성이 점쳐진다. 민주당은 비명계의 공천 배제, 탈당 등으로 본선 경쟁력을 훼손했다. 

21대 총선 당시 서울 스코어가 41:8이었음을 전제하고 들어가자. 노원구 선거구가 하나 줄었음을 감안하면 40:8이 시작지점이다.

괄호는 가장 최근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당선자 소속 정당과, 대선 당시 (윤석열 득표율)-(이재명 득표율)이다.

  • '강남 3구 8석' - 강남 갑(국힘/+41), 강남 을(국힘/+27), 강남 병(국힘/+49), 서초 갑(국힘/+42), 서초 을(국힘/+30), 송파 갑(국힘/+21), 송파 을(국힘/+25), 송파 병(민주/+9)
어차피 기존에도 7석이 국민의힘 의석이었으므로, 이 말을 믿는다고 했을 때 뒤집히는 선거구는 송파구 병 하나다. 내가 아는 선에서는 최근에 송파구 병 여론조사는 나온 적이 없으나,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크게 이긴 곳임을 감안하면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거듭 강조하건대 여기서 국민의힘이 얻는 의석은 최대 1석이다.

  • '한강벨트 15석' - 마포 갑(민주/+12), 마포 을(민주/-3), 용산(국힘/+18), 중·성동 갑(민주/+8), 중·성동 을(민주/+11), 광진 갑(민주/-0.05), 광진 을(민주/+5), 영등포 갑(민주/+6), 영등포 을(민주/+12), 동작 갑(민주/+3), 동작 을(민주/+10), 강동 갑(민주/+10), 강동 을(민주/+5)
까지 하면 13석인데 엄 소장이 생각한 나머지 2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 마포구 갑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가 12%p차로 크게 진 곳이며, 지역구 기반이 탄탄한 현역 노웅래 의원의 컷오프로 잡음이 있었다. 엄경영 소장이 든 예시에 가장 부합하는 지역이다. 참고로 이곳의 후보 확정 후 나온 여론조사는 하나 있는데 오차범위 내 경합이다.
- 마포구 을은 대선 당시에도 이재명 후보가 이긴 지역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운동권 심판'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함운경 후보를 전략공천했지만 현역 정청래 의원이 오차범위 밖에서 넉넉히 리드하는 여론조사를 확인 가능하다.
- 광진구 을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가 5%p차로 진 지역이다. 현역 고민정 의원이 오차범위 내에서 리드하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 동작구 갑동작구 을에서 여론조사상 민주당 후보들이 고전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윤석열 후보가 대선 당시 각각 3%p, 10%p 차로 이긴 곳들이다.
- 영등포구 을에선 현역 김민석 의원이 오차범위 내에서 밀리는 여론조사가 있었다. 이 지역도 윤석열 후보가 12%p차로 이긴 곳이다.
 
  • 종로, 동대문, 서대문 등에서도 선전 - 종로(국힘/+4), 동대문 갑(민주/+6), 동대문 을(민주/+1), 서대문 갑(민주/+5), 서대문 을(민주/-3)
- 종로에서는 민주당 곽상언 후보가 국민의힘 최재형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리드하는 조사가 있다.
- 동대문 을에서는 현역 장경태 의원이 국민의힘 김경진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리드하는 조사가 있다.

14석의 인천 판세는 충청권 민심, 민주당 공천 논란, 녹색정의당 후보 득표력 등에 달렸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계양구청장, 부평구청장 등 두 곳에서만 승리했다. 계양갑·을에선 민주당 우세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지만 부평갑·을은 현역 의원들이 민주당을 탈당해 다자 대결로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동·미추홀, 연수, 남동 등에선 여당 선전 가능성이 있다. 

부평 갑/을에서 현역 이성만/홍영표 의원의 탈당으로 다자구도가 형성된 건 사실이나, 이로 인해 국민의힘 후보가 어부지리를 볼 수 있을지는 아직 여론조사가 별로 없어 확인이 어렵다. 나머지 지역구의 '여당 선전 가능성'에 대한 근거는 물론 없다.

60석의 경기도는 초반 민주당 우세가 점차 약화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 인접 도시를 중심으로 여권의 철도 지하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이슈가 조금씩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경쟁력 있는 비명계 의원들이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다만 경기 남서부에선 민주당의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 결국 서울과 인천에선 국민의힘이, 경기도에서는 민주당이 선전할 전망이다. 수도권 전체론 여야가 거의 비슷한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이 제시한 철도 지하화, GTX 이슈의 편익을 보는 지역들은 대부분 민주당 강세 지역이므로 만약 이곳에서 여당이 의석을 따낼 정도 상황이라면 엄청난 낭보일 것이다. 해당 지역 여론조사가 별로 없어 확인하긴 어렵지만.

'경쟁력 있는 비명계 의원들이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는 부분은 그나마 어느 지역구를 말하는 건지 대충 유추할 수 있다. 작성 시점 경기도에서 경선 탈락한 민주당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알아보자.

  • 수원 정(+2) 박광온, 성남 중원(-19) 윤영찬, 광명 을(-10) 양기대, 고양 병(-1) 홍기원, 남양주 을(-10) 김한정, 용인 병(+8) 정춘숙

과연 이들의 경선 탈락으로 인해서 이 지역구들이 대거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인가?

비수도권에서 호남과 제주 31석은 민주당의 우세가 유지되고 있다. 

참고로 정작 서귀포(민주/-5)에서 민주당을 불안하게 할 만한 여론조사가 최근 나오고 있다.

 반면 21대 총선 당시 7곳에서 당선된 부산·울산·경남에선 의석 확보가 쉽지 않다. (...)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영남 65석을 거의 석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대 대선 당시 민주당이 울산 북구(정작 이곳은 진보당으로 단일화됐다.) 외 영남 전 지역에서 전패한 건 사실이다.


이상의 지역들에서 전부 민주당이 이긴다는 보장이야 물론 없다. 그러나 엄 소장의 예상대로 국민의힘이 '전석 석권'에 가까운 스코어를 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충청·강원에서도 고전이 예상된다. 세종을, 대전 서갑·을, 충남 천안을·병 등 10여 곳을 제외하고는 여당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전 서 을(민주/+7)은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중구(민주/+9) 다음으로 크게 이긴 곳이다. 민주당의 충청 지역 고전을 예상하면서 그 와중에 서 을은 '그래도 민주당이 이길 곳'으로 점친 점은 특이하다. 어쩌면 현역 박범계 의원의 지역구 관리가 기깔나다는 게 엄 소장의 분석인 걸까?

어쩌면 4월 10일에 투표함을 까보면 엄 소장이 한 말대로 국민의힘 170석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예측은 정량적/정성적 근거가 동반된 '예측'이라기보다는 도박 내지 점치기에 가깝게 느껴진다. 언론에서는 엄 소장의 예측에 '그가 민주당 180석을 정확히 맞혔다'는 사실을 곁들이곤 하는데, 그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의 승리 가능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쏙 빠진다.

'점쟁이'들과 받아쓰기 언론

선거여론조사와 그 인용보도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신뢰성이 낮거나 불공정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거나, 혹은 신뢰성이 높은 여론조사라도 왜곡·조작해 보도한다면 그것이 선거에 있어 유권자의 결정을 크게 호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자 우리 언론은 아예 여론조사를 첨부하지도 않고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감대로' 떠드는 자칭 전문가들을 섭외해서 그것이 마치 통계적 진실인 양 실어주고 있다.

현실에서 생각보다 많은 투표자는 투표장에 들어가기 직전에서야 투표결정을 하곤 한다. 이 때문에 경합지의 경우 정량적 통계보다 정성적 감이 더 잘 들어맞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감'에 기반한 예측이 신뢰성을 가지려면 최소한 선거의 특성과 후보자 및 지역구의 특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전국 지지율 표만 보고(어쩌면 그조차 안 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막연한 감에 근거해서 254개 지역구를 예측하겠다는 것은 내가 방구석에서 하는 '예측'보다 딱히 신뢰도가 낫다고 할 수 없으며, 자기들 입맛에 맞는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그 '예측'을 신뢰성 있는 것인 마냥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는 언론 역시 공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