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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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에서 대의원의 영향력을 줄이고 권리당원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민주당의 당헌 개정안을 두고 비명계의 반발이 거세다.
0. 우선 언론에서 '개딸'이라는 단어를 마치 '권리당원'과 동의어인 것마냥 쓰면서 '권리당원의 영향력 확대'를 '개딸의 영향력 확대'로 보도하는 등의 행태는 굉장히 불쾌하다. 거대 정당의 100만이 넘는 권리당원을 전부 이재명 대표의 개인 팬덤인 것마냥 치부하는 것이 온당한가? 그리고 민주당의 일반 권리당원이 언론이 보기에는 전부 '개딸'에 불과하다면 그렇다면 언론이 보기에 대의원은 권리당원과 무엇이 달라서 '개딸'의 대척점인 것인가?
1. 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면책특권을 비롯해서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한 각종 권리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헌법과 법률이 의원의 원활한 의정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그들이 무슨 사회적 특권계층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4년에 한 번씩 주권자 국민에게 직접 재신임을 묻기 때문에 의원이 갖는 이러한 특권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2. 모든 의원들은 하나하나가 국민의 대표이므로 한 덩어리마냥 움직일 필요가 없고 이재명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반대할 수 있고 소신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며 소위 '문자 폭탄'을 비롯한 사적 린치는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소신에 따른 의정활동'은 그들이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보장되는 것이고,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는다는 전제 하에 의원은 4년 간 소신껏 의정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평가 지표로서 제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원욱 의원이나 조응천 의원 등이 이재명 대표에게 반대하는 의정활동을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그의 권리이다. 그리고 화성시 을과 남양주시 갑의 지역 유권자가 그 의정활동에 대해 평가해서 그 의원을 경선 및 본선에서 다시 찍어주든, 떨어뜨리든 그 또한 헌법 제1조제2항에 따른 주권자 국민의 권리이다.
3. 당내 소신파의 언로 보장을 주장하는 사람들 치고 그들이 경선에서 떨어지는 것 또한 그들을 대리인으로서 신임한 당원과 지지자의 정당한 피드백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가령 지난 총선 당시 금태섭 의원이 경선에서 탈락한 것을 두고 '왜 현역 단수공천을 주지 않았느냐?'라며 민주당 지도부를 비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유권자의 대리인으로서 의원의 신임을 유권자에게 물을 수 없다면 그의 의정활동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이들이야말로 의원을 마치 유권자의 상위에 있는 어떠한 '특권 계층'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4. 당원과 지지층 역시 이러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소위 비명계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당원에게는 그들을 경선에서 떨어뜨릴 권리가 있다. 반대로 지역구 당원과 유권자가 ('그래서' 신임한 것이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임한 것이든 간에) 그를 재신임했다고 하면 그의 '소신'은 유권자의 재신임을 통해 정당성을 획득한 것이므로 존중해야 한다. 실제로 여론조사상 앞서고 있는 비명계 의원들도 많다. 가령 대표적 이낙연계 의원 중 하나인 홍영표(부평 을)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당내 후보군을 앞서고 있는데, 그가 경선을 통과해서 재선한다면 그의 반 이재명 의정활동은 부평구 을 당원과 유권자의 신임을 받아 정당성을 획득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 폭탄을 비롯한 사적 제재가 횡행하는 이유는 물론 극성 지지층의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을 탓할 수 있는 지점도 일정부분 존재하겠지만, 여전히 지도부의 '정무적 판단'에 근거한 하향식 공천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당원과 유권자의 '피드백'이 제대로 작동할 거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가령 2016년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을 근거로 한 단수공천 및 컷오프를 자주 감행했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더민주의 당시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내 민주주의'라는 차원에서 '지도부의 정무적 판단'이 자주 개입하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다시 오늘날로 돌아와 위에서 언급한 비명계 의원들 다수는 아마 당원 위주로 경선을 하면 높은 확률로 재선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권을 비주류가 잡거나, 혹은 이재명 대표가 비주류가 대거 잘리는 모양새를 내는 것이 '정무적'으로 좋지 않다고 계산한다면, 단수공천을 받거나 경쟁력 없는 후보들과만 경선을 하는 식으로 지도부의 '정무적 판단'이 개입해 재선할 가능성이 없다고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이 제도권 내의 루트로 내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저런 식의 사적 제재로 '피드백'을 하려는 행위가 만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