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영주와 '영혼 없는' 정치
라인란트
2024. 3. 20. 04:58
https://alook.so/posts/kZtLWmB
김영주 연대기
서울 영등포구 갑 김영주 의원의 정계 입문 전 커리어는 특이하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 지명 당시 기사를 보자. 그녀는 서울신탁은행(현 KEB하나은행) 소속의 실업 농구 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일찍 커리어를 접은 후 은행원으로 변신했다. 새 직장에서 그는 남녀 임금 격차를 체감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금융노조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한 각종 노동권 탄압에 맞서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2000년, 그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문한다. 18대 총선에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했으나 19~21대 내리 3선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성을 살려 국회 환노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위에도 썼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도입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주요 노동정책을 진두지휘했다.
국회로 돌아온 후 김영주 의원은 민주당 몫 21대 국회 후반기 부의장으로 지명되었으며, 여전히 노동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2024년 2월 1일에도 민주당을 대표해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적용을 거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월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민주당의 원로로서 당내 화합과 이재명 대표 중심의 단결을 강조하기도 했다.
2월 19일, 김영주 의원은 민주당 공천심사에서 '하위 20% 통보'를 받았다면서 모멸감을 느껴 탈당을 선언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까지는 선거철마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며칠 후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그녀를 이재명 대표와 비교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분'이라며 추켜세웠다. 위에 쓴 그녀의 행적 중에 대체 무엇이 한동훈 위원장과 국민의힘의 기준에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정책이라고 한 위원장도 인정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환영할 일이다.
아무튼 2주 남짓 지나서 김영주 부의장은 한 위원장과 회동을 갖더니, 3월 4일 국민의힘 정식 입당식을 가졌고, 이후 원 지역구 영등포구 갑에 그대로 단수공천되었다. 상단의 사진은 그렇게 당을 갈아타면서 슬로건은 유지한 채 디자인을 국민의힘에 맞게 바꾼 것이다. 선거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영등포구 갑 유권자들이 저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최근에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의원으로는 대전 유성구 을 이상민 의원도 있지만, 그를 지켜본 분이라면 늦어도 2023년부터는 저 사람은 언젠가 민주당을 떠나겠구나 하는 짐작을 충분히 했으리라 생각한다. 반면 김영주의 기자회견 전까지 대체 누가 그녀를 보고 그녀가 국민의힘에 갈 수도 있다는 짐작을 했을지 의문이다. 위에도 썼지만 2월 1일에 민주당의 친노동 정책 고수를 주도했고, 2월 11일에 이재명 중심 총선 승리를 강조했던 그녀다. 하위 20% 통보를 받은 후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 바오로마냥 지난 16년간 김영주가 해온 모든 일이 잘못되었음을 갑자기 깨달은 것일까?
불과 작년 하반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야권 승리와 윤석열 심판을 위해 뛰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김영주는 “저는 그때 지도부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 가서 유세한다든가 참여하지 않았다”며 “민주당 의원으로서 그 옆에 같이 참석만 했을 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민주당 의원이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바라지 않고 그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면 그녀에게 민주당이 공천을 줘야 할 이유도 없으니 그녀의 하위 20% 분류는 사실 정당했던 것이 아닐까?
답은 간단하다. 정계에 처음 발을 들일 때 김영주는 노동자의 권리 증진을 위한 분명한 생각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4선 중진 김영주에게는 그런 생각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 시점부터 그녀에게 민주당은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라 직장일 뿐이었고, 그럼 기존 직장에서 나를 푸대접했으니 새 직장으로 옮기는 것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그럼 그런 사람을 좋다고 받아주는 한동훈 비대위는 뭔가? 사실 한 위원장에게 국민의힘도 그런 '직장'에 불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국 사태 이전까지는 정말로 민주당 소속으로 정치하는 미래를 윤 대통령이든 한 위원장이든 꿈꿨었고, 지금은 단지 상황상 국민의힘과 이해관계가 맞아서 머무르는 것일 뿐일지도.
'영혼 없는' 정당-정치인-지지층의 3중주
거대 양당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아예 휙 갈아타는 정치인을 최근에 자주 볼 수 있다. 위에 예로 든 김영주 의원도 그렇고, 이상민 의원도 그렇다. 민주 → 국힘 예만 들어서 불공평하다면 반대 사례로는 이언주 전 의원이 있겠다. 조금 작은 스케일로는 공재광 전 평택시장도 얼마 전에 국힘에서 민주당으로 갈아탔다. 당선 시 복당을 전제로 한 공천 불복 무소속 출마까지는 흔히 있는 일이다. 기존 소속당과 내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 제3지대 신당으로 가는 것까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중간 단계(?)조차 거치지 않고 양당 중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넘어가는 건 상당히 특이한 사례임에도 요즘 사례가 너무 많다. 이들이 전부 생각이 극적으로 바뀐 것일까? 위에도 썼지만 그동안 영혼 없이 정치를 해온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문제라고들 하지만 사실 양당은 이념적으로 차이가 벌어진 적이 없다. 최근에 여야가 대립한 의제 중에 경제적 좌/우파나 사회적 진보/보수로 의견이 갈리는 정책을 두고 대립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나마 떠오르는 것들도 사실 상당수가 정책 자체보다는 상대 정파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소모된 혐의가 짙다. 가령 2016년에 야권이 필리버스터까지 해가며 막으려 했던 테러방지법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후에도 그대로 남았다. 지금 민주당이 밀어붙였던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 중에서 민주당이 여당이 되면 다시 추진할 안건이 몇 개나 되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사실 정당들도 '영혼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저런 철새 정치인들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당원과 지지층의 의사에 기반한 상향식 공천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던 편이다. 이래놓고 조국혁신당 지지층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글을 썼다고 모순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었다. 사실 상향식 공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영혼 없는' 정치인들은 강성 당원들이 걸러내고 당이 지향하는 가치에 충실한 사람들이 남게 될 것이다. 여전히 공천의 정당성이 당원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 없지만, (당내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길게 생각을 써볼 생각이다.) 이 '강성 당원'들이라고 '영혼이 있는가' 하는 생각은 요즘 좀 들기 시작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할 당시 민주당 지지층은 압도적으로 찬성했지만 미래통합당 지지층은 반대가 상당했다. 2024년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당시에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찬성률이 오히려 더 높았다. 4년 전에 내가 결사 반대했던 안건을 이번에는 내가 지지하는 정권이 추진한다고 한다. 잠깐이라도 혼란스러워하거나 배신감에 화를 내거나 해야 정상적인 반응 아니겠는가? 하지만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이 그들은 쉽게 의대 증원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 탈바꿈했다. 사실 그들에겐 애초에 의대 증원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고 그냥 '상대가 하니까' 나쁜 일이었다가 '우리 편이 하니까' 좋은 일로 바뀌었을 뿐인 것이다.
정당도 정치인도 심지어는 지지자도 사실 권력을 잡아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이 없다. 그저 선거에서 이겨서 더 큰 권력을 얻는 것 그 자체가 지상목표가 되었을 뿐이다. 상대 정당에 대한 증오는 커지지만 정작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은 흐릿해진다.
'영혼 없는' 민주당과 이재명의 민주당
개인적으로 민주당의 진보적 정체성이 비교적 퇴색되었다고 느낀 지는 오래되었다. 내가 이재명 대표를 이러니저러니해도 민주당의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런 '영혼 없는' 민주당에서 그가 그나마 선명한 진보적 정책방향을 고수하는 인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위에 썼던 중대재해법 유예를 막는 과정에서도 꾸준히 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던 이재명 대표가 역할을 했다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최근 공천에 관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그는 저 '영혼 없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바로잡고자 노력한다기보다 오히려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권향엽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전략공천되었다가 '사천 논란'이 일자 권 후보의 자청으로 경선을 치른 순천·광양·곡성·구례·을의 경우를 보자. 작년 연말에 나온 민주당 후보 선호도 조사를 보면 권향엽 후보(14%)는 현역 서동용 의원(40%)에게 크게 밀렸다. 그러나 전략공천 이후 벌어진 일련의 논란은 오히려 당원들에게 "권향엽이 명심(明心)"이라는 시그널을 준 셈이 되었고, 권 후보는 경선에서 서 의원을 꺾고 공천을 받는 데 성공했다. 어쨌든 지역구 당원이 선택한 결과니까 이 공천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원들은 이재명 대표가 (암묵적으로) 보낸 시그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재명 대표는 그것을 알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가 이번 강북구 을 경선이다.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이 취소된 후 지도부는 차점자인 박용진 의원에게 승계하는 대신 박용진 의원과 조수진 변호사의 '전략 경선'을 택했다. 박용진 의원은 여전히 하위 10% 대상 30% 감점을 받는데, 이재명 대표는 그걸로 안심이 안 됐던 모양이다. 지원 후보가 꽤 많았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혹시라도 표가 분산될까봐 1:1 대결을 택했으며, 맞상대로 골라진 조수진 후보는 여성+신인으로서 규정상 최대한인 25%의 가산점을 받으며, 노무현재단 이사 경력 때문에 지금 양문석 후보 '막말' 논란을 고리로 이재명 지도부와 대립하는 친노문 진영이 적대하기도 애매하다. 그걸로도 불안했는지 심지어 강북 을 지역에 살지도 않는 전 당원에게 투표권을 줬다. 나도 박 의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좀 심하다고 느꼈다. 저 정도 악의면 박 의원이 사석에서 이재명 대표 가족 욕이라도 한 거 아닌가 진지하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무튼 별 이변 없이 조수진 변호사가 경선에서 승리했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조 후보는 감점/가점 적용 없이도 박 의원을 강북 을 권리당원에서도 이겼으며, 전국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압도했다고 한다. (그나마 강북 을 당원의 의사를 전국 당원이 뒤집은 꼴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어쨌든 민주적 경선이라는 모양새는 갖췄으며, 박용진 의원에게는 완벽하게 밀린 결과로 굴욕을 줬고, 당원들에게는 내 손으로 후보를 결정한다는 효능감까지 세 마리 토끼를 이재명 대표는 다 잡은 셈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은 날 이종섭 호주대사 / 황상무 수석 문제로 윤-한 갈등이 빚어진다(...)는 보도가 연달아 나오면서 강북 을 경선은 딱히 주목을 받지도 않았다.
아마 저런다고 선거를 지지는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심판론은 굳건하고 거기다 더해 윤석열 정부는 망하는 길만 골라 가고 있으며 이제 와서 꺼내들 반전 카드도 딱히 없다. 이재명 대표는 이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민주당 공천으로 내홍이 빚어진 지역 절대 다수는 어차피 민주당 텃밭인 지역이기 때문에 소선거구제 총선에서 저걸로 본선에 미칠 영향력은 미미하다. 강북구 을에서 저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그 지역이 소선거구제 이래 한 번도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 없는 텃밭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는 본선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공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험지 내지 접전지에서는 또 별 무리수를 두지 않고 있다. 정말 '선거 승리'+'당내 영향력 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만을 위해선 최선의 수만 골라 두고 있는 감상이다.
한때는 그렇게 친명계가 주류가 되면 민주당이 더 진보적인 당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런 모습을 흘려 넘겼다. 요즘은 애초에 민주당이 진보적이지 않게 된 게 그런 '영혼 없는' 면모에서 비롯된 건데, 그 '영혼 없음'을 개선할 생각 없이 오히려 이용함으로써 '진보 정책'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재명 대표 본인에게 진보적인 신념이 있을지언정 그 후광으로 당선된 친명계 정치인들은 '이재명 대표를 지키자' 외에는 '영혼 없는' 사람들일 거고, 그럼 이재명 이후의 민주당도 여전히 '영혼 없는' 정당일 테다.
그럼에도 비명계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이럴 거면서 왜 민주당을 떠나거나 공천 탈락한 비명계 의원들을 그리 고깝게 봤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달리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대안을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판단은 달라진 바가 없다.
물론 내가 '하위 n% 분류'를 통한 공천 불이익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지금 분위기상 아마 민주적인 완전경선을 했어도 결과에 아주 드라마틱한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들과 이들의 편에 선 언론이 그 결과를 '민주적 결과'로서 수용했을 것인가? 글쎄다. '원칙과 상식' 모임이 창립될 당시 했던 기자회견을 보면 이들이 가진 구체적인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2000년, 그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문한다. 18대 총선에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했으나 19~21대 내리 3선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성을 살려 국회 환노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위에도 썼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도입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주요 노동정책을 진두지휘했다.
국회로 돌아온 후 김영주 의원은 민주당 몫 21대 국회 후반기 부의장으로 지명되었으며, 여전히 노동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2024년 2월 1일에도 민주당을 대표해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사업장 유예 적용을 거부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월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민주당의 원로로서 당내 화합과 이재명 대표 중심의 단결을 강조하기도 했다.
2월 19일, 김영주 의원은 민주당 공천심사에서 '하위 20% 통보'를 받았다면서 모멸감을 느껴 탈당을 선언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여기까지는 선거철마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며칠 후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그녀를 이재명 대표와 비교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분'이라며 추켜세웠다. 위에 쓴 그녀의 행적 중에 대체 무엇이 한동훈 위원장과 국민의힘의 기준에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것인지 궁금하다. 사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정책이라고 한 위원장도 인정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환영할 일이다.
아무튼 2주 남짓 지나서 김영주 부의장은 한 위원장과 회동을 갖더니, 3월 4일 국민의힘 정식 입당식을 가졌고, 이후 원 지역구 영등포구 갑에 그대로 단수공천되었다. 상단의 사진은 그렇게 당을 갈아타면서 슬로건은 유지한 채 디자인을 국민의힘에 맞게 바꾼 것이다. 선거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영등포구 갑 유권자들이 저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최근에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간 의원으로는 대전 유성구 을 이상민 의원도 있지만, 그를 지켜본 분이라면 늦어도 2023년부터는 저 사람은 언젠가 민주당을 떠나겠구나 하는 짐작을 충분히 했으리라 생각한다. 반면 김영주의 기자회견 전까지 대체 누가 그녀를 보고 그녀가 국민의힘에 갈 수도 있다는 짐작을 했을지 의문이다. 위에도 썼지만 2월 1일에 민주당의 친노동 정책 고수를 주도했고, 2월 11일에 이재명 중심 총선 승리를 강조했던 그녀다. 하위 20% 통보를 받은 후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 바오로마냥 지난 16년간 김영주가 해온 모든 일이 잘못되었음을 갑자기 깨달은 것일까?
불과 작년 하반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야권 승리와 윤석열 심판을 위해 뛰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김영주는 “저는 그때 지도부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 가서 유세한다든가 참여하지 않았다”며 “민주당 의원으로서 그 옆에 같이 참석만 했을 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민주당 의원이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바라지 않고 그를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면 그녀에게 민주당이 공천을 줘야 할 이유도 없으니 그녀의 하위 20% 분류는 사실 정당했던 것이 아닐까?
답은 간단하다. 정계에 처음 발을 들일 때 김영주는 노동자의 권리 증진을 위한 분명한 생각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4선 중진 김영주에게는 그런 생각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 시점부터 그녀에게 민주당은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라 직장일 뿐이었고, 그럼 기존 직장에서 나를 푸대접했으니 새 직장으로 옮기는 것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그럼 그런 사람을 좋다고 받아주는 한동훈 비대위는 뭔가? 사실 한 위원장에게 국민의힘도 그런 '직장'에 불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국 사태 이전까지는 정말로 민주당 소속으로 정치하는 미래를 윤 대통령이든 한 위원장이든 꿈꿨었고, 지금은 단지 상황상 국민의힘과 이해관계가 맞아서 머무르는 것일 뿐일지도.
'영혼 없는' 정당-정치인-지지층의 3중주
거대 양당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아예 휙 갈아타는 정치인을 최근에 자주 볼 수 있다. 위에 예로 든 김영주 의원도 그렇고, 이상민 의원도 그렇다. 민주 → 국힘 예만 들어서 불공평하다면 반대 사례로는 이언주 전 의원이 있겠다. 조금 작은 스케일로는 공재광 전 평택시장도 얼마 전에 국힘에서 민주당으로 갈아탔다. 당선 시 복당을 전제로 한 공천 불복 무소속 출마까지는 흔히 있는 일이다. 기존 소속당과 내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 제3지대 신당으로 가는 것까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중간 단계(?)조차 거치지 않고 양당 중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넘어가는 건 상당히 특이한 사례임에도 요즘 사례가 너무 많다. 이들이 전부 생각이 극적으로 바뀐 것일까? 위에도 썼지만 그동안 영혼 없이 정치를 해온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문제라고들 하지만 사실 양당은 이념적으로 차이가 벌어진 적이 없다. 최근에 여야가 대립한 의제 중에 경제적 좌/우파나 사회적 진보/보수로 의견이 갈리는 정책을 두고 대립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나마 떠오르는 것들도 사실 상당수가 정책 자체보다는 상대 정파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소모된 혐의가 짙다. 가령 2016년에 야권이 필리버스터까지 해가며 막으려 했던 테러방지법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후에도 그대로 남았다. 지금 민주당이 밀어붙였던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 중에서 민주당이 여당이 되면 다시 추진할 안건이 몇 개나 되는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사실 정당들도 '영혼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저런 철새 정치인들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당원과 지지층의 의사에 기반한 상향식 공천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던 편이다. 이래놓고 조국혁신당 지지층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글을 썼다고 모순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었다. 사실 상향식 공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영혼 없는' 정치인들은 강성 당원들이 걸러내고 당이 지향하는 가치에 충실한 사람들이 남게 될 것이다. 여전히 공천의 정당성이 당원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 없지만, (당내 민주주의에 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길게 생각을 써볼 생각이다.) 이 '강성 당원'들이라고 '영혼이 있는가' 하는 생각은 요즘 좀 들기 시작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할 당시 민주당 지지층은 압도적으로 찬성했지만 미래통합당 지지층은 반대가 상당했다. 2024년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당시에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찬성률이 오히려 더 높았다. 4년 전에 내가 결사 반대했던 안건을 이번에는 내가 지지하는 정권이 추진한다고 한다. 잠깐이라도 혼란스러워하거나 배신감에 화를 내거나 해야 정상적인 반응 아니겠는가? 하지만 전혀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이 그들은 쉽게 의대 증원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로 탈바꿈했다. 사실 그들에겐 애초에 의대 증원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고 그냥 '상대가 하니까' 나쁜 일이었다가 '우리 편이 하니까' 좋은 일로 바뀌었을 뿐인 것이다.
정당도 정치인도 심지어는 지지자도 사실 권력을 잡아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비전이 없다. 그저 선거에서 이겨서 더 큰 권력을 얻는 것 그 자체가 지상목표가 되었을 뿐이다. 상대 정당에 대한 증오는 커지지만 정작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은 흐릿해진다.
'영혼 없는' 민주당과 이재명의 민주당
개인적으로 민주당의 진보적 정체성이 비교적 퇴색되었다고 느낀 지는 오래되었다. 내가 이재명 대표를 이러니저러니해도 민주당의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런 '영혼 없는' 민주당에서 그가 그나마 선명한 진보적 정책방향을 고수하는 인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위에 썼던 중대재해법 유예를 막는 과정에서도 꾸준히 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던 이재명 대표가 역할을 했다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최근 공천에 관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그는 저 '영혼 없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바로잡고자 노력한다기보다 오히려 그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권향엽 전 청와대 비서관이 전략공천되었다가 '사천 논란'이 일자 권 후보의 자청으로 경선을 치른 순천·광양·곡성·구례·을의 경우를 보자. 작년 연말에 나온 민주당 후보 선호도 조사를 보면 권향엽 후보(14%)는 현역 서동용 의원(40%)에게 크게 밀렸다. 그러나 전략공천 이후 벌어진 일련의 논란은 오히려 당원들에게 "권향엽이 명심(明心)"이라는 시그널을 준 셈이 되었고, 권 후보는 경선에서 서 의원을 꺾고 공천을 받는 데 성공했다. 어쨌든 지역구 당원이 선택한 결과니까 이 공천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원들은 이재명 대표가 (암묵적으로) 보낸 시그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재명 대표는 그것을 알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가 이번 강북구 을 경선이다.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이 취소된 후 지도부는 차점자인 박용진 의원에게 승계하는 대신 박용진 의원과 조수진 변호사의 '전략 경선'을 택했다. 박용진 의원은 여전히 하위 10% 대상 30% 감점을 받는데, 이재명 대표는 그걸로 안심이 안 됐던 모양이다. 지원 후보가 꽤 많았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혹시라도 표가 분산될까봐 1:1 대결을 택했으며, 맞상대로 골라진 조수진 후보는 여성+신인으로서 규정상 최대한인 25%의 가산점을 받으며, 노무현재단 이사 경력 때문에 지금 양문석 후보 '막말' 논란을 고리로 이재명 지도부와 대립하는 친노문 진영이 적대하기도 애매하다. 그걸로도 불안했는지 심지어 강북 을 지역에 살지도 않는 전 당원에게 투표권을 줬다. 나도 박 의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좀 심하다고 느꼈다. 저 정도 악의면 박 의원이 사석에서 이재명 대표 가족 욕이라도 한 거 아닌가 진지하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무튼 별 이변 없이 조수진 변호사가 경선에서 승리했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밝힌 바에 의하면 조 후보는 감점/가점 적용 없이도 박 의원을 강북 을 권리당원에서도 이겼으며, 전국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압도했다고 한다. (그나마 강북 을 당원의 의사를 전국 당원이 뒤집은 꼴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어쨌든 민주적 경선이라는 모양새는 갖췄으며, 박용진 의원에게는 완벽하게 밀린 결과로 굴욕을 줬고, 당원들에게는 내 손으로 후보를 결정한다는 효능감까지 세 마리 토끼를 이재명 대표는 다 잡은 셈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은 날 이종섭 호주대사 / 황상무 수석 문제로 윤-한 갈등이 빚어진다(...)는 보도가 연달아 나오면서 강북 을 경선은 딱히 주목을 받지도 않았다.
아마 저런다고 선거를 지지는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심판론은 굳건하고 거기다 더해 윤석열 정부는 망하는 길만 골라 가고 있으며 이제 와서 꺼내들 반전 카드도 딱히 없다. 이재명 대표는 이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민주당 공천으로 내홍이 빚어진 지역 절대 다수는 어차피 민주당 텃밭인 지역이기 때문에 소선거구제 총선에서 저걸로 본선에 미칠 영향력은 미미하다. 강북구 을에서 저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그 지역이 소선거구제 이래 한 번도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 없는 텃밭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는 본선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공천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험지 내지 접전지에서는 또 별 무리수를 두지 않고 있다. 정말 '선거 승리'+'당내 영향력 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만을 위해선 최선의 수만 골라 두고 있는 감상이다.
한때는 그렇게 친명계가 주류가 되면 민주당이 더 진보적인 당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런 모습을 흘려 넘겼다. 요즘은 애초에 민주당이 진보적이지 않게 된 게 그런 '영혼 없는' 면모에서 비롯된 건데, 그 '영혼 없음'을 개선할 생각 없이 오히려 이용함으로써 '진보 정책'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재명 대표 본인에게 진보적인 신념이 있을지언정 그 후광으로 당선된 친명계 정치인들은 '이재명 대표를 지키자' 외에는 '영혼 없는' 사람들일 거고, 그럼 이재명 이후의 민주당도 여전히 '영혼 없는' 정당일 테다.
그럼에도 비명계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이럴 거면서 왜 민주당을 떠나거나 공천 탈락한 비명계 의원들을 그리 고깝게 봤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달리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대안을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판단은 달라진 바가 없다.
물론 내가 '하위 n% 분류'를 통한 공천 불이익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지금 분위기상 아마 민주적인 완전경선을 했어도 결과에 아주 드라마틱한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들과 이들의 편에 선 언론이 그 결과를 '민주적 결과'로서 수용했을 것인가? 글쎄다. '원칙과 상식' 모임이 창립될 당시 했던 기자회견을 보면 이들이 가진 구체적인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이들은 “민주당은 이재명의 당도, 강성 지지층의 당도 아니다”라며 “친명 일색의 지도부, 강성 지지층, 외부 유튜브 언론 등이 지배하는 획일적·전체주의적 목소리로는 국민의 민주당으로 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영찬 의원은 “당내 민주주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며 “현재 우리 당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확장성이 반드시 담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욱 의원도 “이 대표가 가짜 뉴스 진원지인 ‘재명이네 마을’ 팬 카페 이장직을 사퇴하고, 강성 팬덤 유튜브 채널에 정치인들의 출연을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야권의 강성 유튜버 중심에는 김어준씨가 있다.
① 대충 자기가 수박으로 찍히면 → ② 친명 '저격수'가 붙고 → ③ 그 '저격수'가 김어준 방송에서 인지도를 쌓고 '여론조사 꽃'에서 여론조사가 돈다. - 이 과정이 '공정한 경선'이 아니고 '민주주의'가 아니라는게 이들의 진짜 불만인 것이다.
그 대안이랍시고 나오는 게 "정치인들이 김어준 유튜브 못 나가게 하자"는 식의, 그냥 현상을 안 보여 안 들려 하고 무시하자는 수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가 이재명 체제의 당 운영에 문제의식을 느끼더라도 이들에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최소한 김어준 유튜브 구독하라고 당원들에게 권한 적은 없다. 김어준 씨의 유튜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많은 지지자들에게 파급력을 갖게 된 것은 (그것이 일정부분 비이성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전적으로 대중에 의해 자연발생한 현상이다. 사실 이론상으로는 비명계 의원들도 비슷한 유튜브 하나 만들고 거기 나가서 여론전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즉 자기들은 그만큼의 인기가 없다는 걸 스스로도 아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주의가 다수대중의 '영혼 없음'을 이용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 동원하는 것이라면, 비명계 정치인들의 민주주의는 실재하는 다수대중을 그냥 안 보여 안 들려 하며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가상의 '침묵하는 다수'를 설정해놓고는 그 침묵하는 다수의 뜻에 맞게 정치인들끼리만 고담준론해야 한다는 소리로 들린다. 대중을 수단으로 쓰는 전자가 답이 아니라고 해서 대중을 아예 무시하는 후자가 답이 될 수는 없다. 대중의 지지 없이 정치인들끼리만 '좋은 민주주의'를 해봤자 그것은 언젠가 더 큰 반동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