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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을 수 있는 말이 '정치적 양극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적 양극화가 '왜' 문제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정치적 양극화가 문제인 이유는 '아무튼 싸움은 나쁘고 화해가 좋기 때문' 같은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I. 나무위키의 '사법화'

  나무위키는 명실상부 가장 성공한 한국어 위키위키 사이트이며 한국 인터넷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딜 가나 나무위키에 대한 불만을 볼 수 있다. 비판의 주된 논지 중 하나는 "시간 많고 규정 잘 아는 백수가 전문가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규정에 대한 해박한 이해가 없으면 실제로 논리가 얼마나 탄탄한가와 별개로 토론에서 '제도적으로' 승리하기 어려운 나무위키의 복잡하고 비직관적인 토론 규정과, 그 규정을 어기면 가차없이 날아오는 차단 때문에 생기는 불만이다. 나무위키는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걸까?

   나무위키의 초기 주도자들은 초기 리그베다 위키의 각종 운영상 문제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위키백과가 그러하듯이 위키 운영자들의 투표로 운영진을 선출하는 체제를 도입했었으며, 엄격한 성문 규정에 따라 위키를 운영하길 원했다. 하지만 초창기(15.11.05.)의 기본방침편집지침(15.11.08.)은 '상식 선'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느슨한 영역을 많이 남겨뒀었으며, 운영자들을 포함해 많은 이용자들은 여전히 빡빡한 규정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극초기 나무위키에서는 '유도리 있는 운영'을 원했던 당시 운영자들과, 규정을 엄격히 준수한 운영을 원했던 이용자들 간의 충돌이 자주 빚어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운영회의 합의안을 보면 규정에 아무 근거가 없는 차순위 당선자의 찬반투표가 운영진 간 합의로 추가되거나, (지금보다 훨씬 복잡했던) 당시의 규정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운영진들이 임의로 게시판 관리 규정을 만들어 쓰는 등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던 중 1기 선출직 운영진이 IRC 친목질 사건으로 단체로 쓸려나가면서, '유도리 있는 운영'을 주장하던 진영은 동력을 상실했고, 이후로는 엄격한 규정에 따른 운영을 표방하게 된다. 규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던 운영진들이 사라지고 이후 운영진들은 이를 교사로 삼아 엄격한 법치주의(?) 하의 운영을 추구하게 된 것까지는 뭐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그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 규정이 점점 늘어나고 복잡해져갔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여유 공간'을 많이 남겨뒀던 초반의 규정은 각종 해석 논쟁과 규정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소위 '룰 치킨' 행위에 시달렸다. 나무위키의 규모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져 한국 인터넷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다른 의견을 가진 토론자들 사이에서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좁아졌고, 강제력이 있는 규정 외에는 상대를 승복하게 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규정은 점점 늘어난다. 분할 직전의 기본방침(16.9.8.)편집지침(16.12.14.)을 보면 약 1년여 사이에 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진 것을 볼 수 있다. 7년이 더 지난 현재의 나무위키 규정은 이때보다도 더욱 비대해진 상태이다. 이후 민선 체제가 이런저런 잡음 끝에 찝찝함을 남기고 폐지되고 운영자 umanle가 직접 관리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방대하고 복잡한 규정과 경직된 토론 문화는 여전히 남았다.

 

  많은 경우 나무위키의 토론은 정말 의견을 제시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토론'이라기보다는, 규정이 정해준 신뢰성 순위에 따라 더 높은 자료를 내는 사람이 이기는 카드 게임처럼 돌아간다. (대체로 제도권 언론(7순위)을 한쪽만 찾아오면 그쪽이 이기고, 가끔 논문(6순위 이상)을 찾아오면 거의 치트키처럼 쓰인다.) 많은 사람이 보는 위키 문서에 내 관점을 반영하고 싶어하는 토론자들은 상대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을 생각이 없고 싸워서 이길 생각 뿐이다. 결국 토론은 무슨 수단을 써서든 상대를 꺾기 위한 장으로 변질되며, 상대를 '꺾을'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규정은 점점 방대해지고, 다시 그 복잡한 규정이 진입장벽으로 기능하며 그것을 잘 아는 소수가 토론장을 점령하게 되는 것이 나무위키의 현주소인 것이다.

II.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치

 

  2023년 광복절 특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동년 5월 18일 대법원 판결로 직을 잃었던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특별사면해 피선거권을 회복시켰고, 이후 그는 본인의 퇴직으로 인해 열린 하반기 보궐선거 출마를 강행한다.  소위 '맹형규법'으로 알려진 공직선거법 제266조는 자진사퇴 및 선거비용 초과/선거사무장 등의 범죄로 인한 당선무효로 퇴직한 사람이 본인 때문에 생긴 재보궐선거에 못 나오도록 하고 있으나, 본인의 범죄로 인한 당선무효 or 피선거권 상실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바는 없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이 후자는 선거에 나와도 된다는 뜻일 리가 있나? 본인의 범죄로 피선거권을 잃으면 상식적으로 당연히 피선거권이 없어서 못 나오기 때문에 굳이 규정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를 "그럼 피선거권을 회복시켜주면 되네?"라고 해석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렇게 재출마한 김태우는 참패했다.) 이후에야 민주당은 '김태우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나선다.

   2023년 10월 7일 밤,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던 김행 여가부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중 여당 의원들과 함께 퇴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법적 제재를 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임명을 막을 법적 근거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게 해도 된다는 일일 리는 만무하다. 상식적으로 후보자가 청문회를 보이콧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에 대한 제재 규정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후 민주당은 또다시 '김행 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결과적으로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이후 김행 본인이 사퇴하면서 일단락된다.)

  현실적으로 법이 모든 것을 사전에 예측해서 일일이 규제할 수는 없다. 정치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상식', '관례' 등으로 돌아가는 영역이 있을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 '상식'의 영역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모든 수단을 활용해 야당에 맞서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은 그에 대한 대응으로 다시 '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위에서 살펴봤던 나무위키의 규정이 비대화되어왔던 역사와 매우 유사하다.

  윤석열 정부는 왜 이런 '비상식적인' 정치를 하는가? 이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대화 파트너'가 아니라 '무찔러 없애야 할 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상대 정당에게 권력이 넘어갈 경우 나라가 크게 잘못될 거라는 불안감과, 따라서 '무슨 수'를 써서든 우리 정당의 '승리'가 지상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런 '비상식적인' 수에 거리낌없이 손을 대게 만드는 것이다. 예시는 윤석열 정부로 들었지만,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민의힘을 대화 상대로 보지 않고 무찔러 없애야 할 적으로 본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하다면, 분쟁을 끝낼 방법은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밖에 없다. 나무위키에서 규정이 그 역할을 했듯이, 현실에서는 법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III. 정치의 사법화와 정치의 실종

  정치적 양극화는 언뜻 보면 각 정당이 자당의 정파적 의제를 목숨 걸고 관철시키려고 하며 이 과정에서 극한 대립을 하게 되는, '정치의 과잉'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극화는 사실 정치의 과잉이라기보다 정치의 소멸로 이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무찔러 없애야 할 적'으로 보는 판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강제력의 힘을 빌려야 한다. 외견상 정치판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법과 사법부의 힘이다. 최근 정치판에서는 당내정치든, 정당 간의 정치든 간에 문제를 법원으로 끌고 가서 '승패'를 가리려고 하는 것을 너무 흔히 볼 수 있다. 예컨대 지난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축출되는 과정에서 양쪽의 '승패'를 가린 것은 양측의 정치적 싸움이 아니라 법원의 판결이었다. 선출직 정치인들 스스로가 풀어나갈 영역이 실종되고, 비선출 권력인 사법부가 마치 '심판'마냥 정치인들 위에 군림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유난히 소위 '법복귀족'의 전횡과 병폐가 지적되는 것은 정치의 양극화에 따른 정치의 사법화와도 맥이 닿아 있다. 정치인들 스스로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법의 힘을 빌리고자 하면서 법이 정치인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고, 그 법을 무기로서 사용할 수 있는 법조인들이 비대한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IV. 그래서 어떡하라고?


  요즘 '제3지대'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이런 정치적 양극화의 문제에 각별히 신경쓰는 것 같다. 많은 언론 또한 이에 동조한다. 그런데 '(양극화되지 않은) 합리적 중도세력'이 권력을 쥐게 되면 정치적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 언론에서 '극단적인 유권자'라고 낙인을 찍는 이들은 단순히 '목소리만 큰 소수'가 아니라 이미 양쪽 끝에서 무시 못할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극단적 유권자'를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안 보여 안 들려 한다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져서 중도적인 유권자로 변할 것인가? 그럴 리가.

  이미 유의미한 세력이 형성된 유권자 계층은 무시하거나 힘으로 찍어누른다고 해서 없앨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합법적인 루트로 반영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더욱 과격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치권이 듣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전에도 썼지만 나는 강성 지지층이 극단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의 일정 부분은 합법적 루트로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다는 불안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오히려 '극단적인 목소리'조차도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합법적인 루트로 대변될 수 있게 하고 유권자에게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흐르는 강물을 무작정 막으면 그 물이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게 아니라 범람해 홍수를 일으키겠지만, 댐을 만들고 배수로를 만든다면 어느 정도는 물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법이다.

  중도적인 유권자에서 극단적인 유권자까지 다양한 유권자들이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선거를 통해 자신의 대변인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그 다양한 유권자를 대변하는 정치 세력들이 각자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제시하며 경쟁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영역'을 되살릴 길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의 판단은 정치 평론가나 정치외교학과 교수들도, 법원도 아닌, 주권자 국민 자신이 투표장에서 할 것이다.



+) 덤:
-  결국은 다당제를 주장하는 거면 뭐가 다르냐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 거 같은데, 나는 중도 세력이 극단주의 세력들을 '도태'시키고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모두 경쟁해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전에 썼던 연동형 비례제 반대론에서 다당제에 대한 회의적 입장을 폈던 것과 모순되는 것 아니냐고? 궁극적으로 나는 다당제가 양당제보다 이상적인 제도라고 생각하지만, 여러 제반조건이 동시에 갖춰져야지 선거제도만 인위적으로 다당제 친화적으로 바꿔봤자 좋은 결과를 낳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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