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의 승리? '범진보'의 위기, 그리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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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의 여론조사상 승승장구에도 보이지 않는 '진보' 의제
- 문재인의 실패로 우경화된 공론장, 윤석열의 실패에도 회복되지 않는 이유는?
- 선거 승리 이후의 '진보'에 대한 민주당의 계획은 있을까
범야권의 승리≠진보의 승리?
22대 총선이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수의 시중 여론조사는 여권의 대참패를 가리키고 있으며 고작 이틀 만에 여권이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킬 방법은 없어 보인다. 물론 보수 성향 평론가들의 희망사항대로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수많은 '샤이 보수'가 투표일에 대거 결집해 판을 뒤흔들지 어쩔지는 까봐야 알 일이므로 아직까지 결과가 확정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일단 대다수 사람들이 그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선거 결과에 대해선 내 나름대로의 예상이 있긴 하나 엄밀한 통계적 근거가 있는 물건은 아니니 일단 넘긴다.
민주당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는 관측과 대조적으로, 제1의 진보정당이었던 녹색정의당은 봉쇄조항인 3%를 넘기는 것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려 있다. 그동안 이런 상황에서 으레 "보수 양당 중 누가 이기든 간에 진정한 진보는 달성될 수 없다"는 냉소를 보내는 진보정당 지지자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비웃거나 화를 냈겠지만 이번만큼은 나 역시 그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이번 총선에서 설령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해도 거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에 대한 진보의 승리'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늘 그랬듯이 양당은 거칠게 싸우고 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정책 방향성을 두고 '보수 vs 진보'로 다툰다는 인상은 받기 어렵다. 야권이 얼마나 크게 이길지를 가를 핵심 승부처인 수도권 중산층 거주지에서는 민주당 후보들도 조속한 재개발 재건축 내지는 세제(稅制) 합리화 등 그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공약을 앞다퉈 내걸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을 더 개혁적으로 견인하는 정당'을 자처하지만, 철저하게 수도권 거주 엘리트 위주로 구성된 정당의 '개혁적' 방향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진보좌파'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쩌면 '진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심히 뒤틀리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여러모로 22대 국회에서 흔히 '범진보'로 일컬어지는 민주진영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진보적인 법안들의 추진'으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는 하기 어려워 보인다. 흔히 '범진보'로 불리는 민주당의 선거 승리가 유력시되지만, 정작 진보 의제는 선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 아이러니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결국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생각대로 민주당도 국민의힘과 똑같은 보수정당이었을 뿐인가? 문제의 근원은 조금 더 복잡하다.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로 과거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진보정당에 시민사회에 대해 모호한 수준이나마 '큰 틀에서 우리 편'이라는 동류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둘 간에 서로 피드백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선거제 개편과 위성정당 창당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게 누구 잘못이건 간에) 둘 사이가 틀어지고, 다수의 민주당 지지자가 진보 진영을 국민의힘과 다를 바 없는 '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진보 의제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도 자연히 꺾인 면이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서로 틀어진 과정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짚어본 바 있다.) 나머지 한 가지 요인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담론 지형 자체가 크게 우경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쓰겠다.
당연론적 '진보'의 실패에 대한 반동
'보수는 능력, 진보는 도덕'이라는 고리타분한 도식은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상당수의 진보 의제는 비용 대비 편익을 따지는 효율의 관점보다는 당위와 보편적 도덕률의 측면에서 유권자를 설득하면서 추진된다는 점이다. 가령 최저임금제는 경제학의 기본 중의 기본인 수요-공급 법칙을 어기는 제도이다. 물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최저임금제를 경제학의 관점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도 많이 제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중을 상대로 최저임금제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보통 그런 복잡한 경제학 이론을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사람의 노동에 최소한 이 정도 대가는 지급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의존한다. "당연히 누구나 월급만으로 생활이 가능해야 하는 거 아냐?", "당연히 노동자도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와 같은 '당연함'에 대한 동의가 많은 진보 의제의 추동력이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이 '당연함'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깨지는 순간 진보 의제는 그 동력을 잃는다.
시계를 2017년으로 잠깐 돌려보면, 진보 성향인 분들이 보기에는 성에 차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취임 초기의 문재인 정부는 진보 시민사회의 정책적 요구를 상당히 많이 수용했다고 생각한다. (뒤로 가면 후퇴하지만) 최저임금의 큰 폭의 인상이 그러했고, 주 52시간 근로의 도입이 그러했고, 탈원전도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이러한 정책들에 대해 충분한 공론과 숙의가 있은 끝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냈기 때문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을 거치면서 "보수=악", "'진보'=선"이라는 분위기가 대세가 된 상황에서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느낌으로 추진된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보수에 대한 배척이 사회 주류가 된 분위기에서 '당연한 진보'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얻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보는 그저 '당연함'을 무기로 밀고 나갈 수 있었고, 보수가 그 '당연함'에 맞서기 위해선 이러쿵저러쿵 혓바닥이 길어져야 했다.
그리고 그게 누구 잘못이건 간에 문재인 시대의 '당연한 진보'는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진보' 정책들은 많은 이들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고 받아들여졌으며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당연한 진보'에 대한 사회적인 동의가 깨지자 진보 의제는 그 추동력을 잃었고, 그 반동으로 보수가 '당연함'을 무기로 삼기 시작한다. 2020-21년 즈음 우리 정치를 지배했던 키워드는 "공정"이었고, 이는 "당연히 공부 더 많이 한 사람이 더 좋은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거 아니야?"와 같은 '당연함'에 호소하는 보수주의를 의미했다. 보수가 그저 모두가 동의하는 '당연함'을 무기로 밀고 나가고, 진보가 그 '당연함'에 맞서려면 혓바닥이 길어져야 했다.
이 '당연론적 보수'가 완전히 승기를 잡은 상징적 사건이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였다. 이 선거는 '당연론적 보수'가 사회의 주도권을 잡았음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신호가 되었으며, 2021년 내내 '공정' 담론은 당연한 사회적 합의인 것마냥 신문지면을 가득 채웠다. 이 즈음 국민의힘 대표에 당선된 이준석은 이 시류를 잘 활용한 정치인이었고, 보수는 담론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이는 정권교체로까지 이어진다.
윤석열의 실패는 보수의 실패인가?
그리고 그렇게 출범한 보수 정권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1차적으로 그 촉매제가 된 건 정권교체를 이끈 '당연론적 보수'의 상징격인 이준석을 깔끔하지 못한 방법으로 내치면서였고, 이후로는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가 만들어낸 각종 논란과 실정들이 지지율을 깎아먹었다. 거듭 강조하듯 까보기 전에는 모를 일이나, 집권 2년차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이 정도로 코너에 몰린 분위기에서 선거를 치르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문재인의 실패가 보수주의 의제의 부상으로 이어진 것과 달리 윤석열의 실패는 왜 진보주의 의제의 부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깎아먹었던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진보 진영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대중에게 '진보주의 정책'으로 여겨졌던 정책들의 실패였다. 반면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뭐 때문에 떨어졌는지 굵직한 요인들을 짚어보자.
① '대파'로 대표되는 물가 인상에 대한 대응 실패 ② 당무 개입과 언론 탄압 등으로 보여준 권위주의적 행보 ③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 이종섭 호주대사 부임 시도 등 무원칙하게 '내 사람'을 싸고 도는 행동 |
대선 이전에 윤석열을 대권주자로서 지지한 사람들이 대파가 4천원이어도 되고 당대표를 대통령 입맛대로 갈아치워도 된다고 생각해서 그를 지지했을까? 윤석열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문재인의 실패와 달리 '당연론적 보수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그냥 윤석열 본인이 이념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말도 안 되는 무능과 비행을 보여줘서 실패한 것 뿐이다. 이준석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면서 꿈꿨던 '보수주의'는 사실 윤석열 정부에서 제대로 실현된 적도 없고, 대중이 윤석열을 심판하고 민주당에게 기회를 준다고 해서 그 이유가 보수주의 대신 진보주의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윤석열에 대한 심판은 그저 보편적인 '무능'에 대한 심판일 뿐이고, 민주당에게 기대하는 것 역시 (보수에 대비되는 진보가 아니라) 무능에 대비되는 유능함일 뿐이다.
즉 '범야권'이 윤석열 정부의 무능에 대한 대안으로서 선택받았을 뿐, '범진보'는 아직 대중에게서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다. 따라서 대중의 니즈에 맞춰 민주당 역시 관료적이고 탈정파적인 '유능함'만을 추구할 뿐, '진보'를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이 작금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범진보의 승리'라는 헤드라인 자체가 줄 새로운 기회
그럼 이념적으로 다를 바 없는 보수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 고착되고 '진보 의제'라는 것은 숨쉴 공간이 없어질 것인가? 낙담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진보'라는 게 이름만 남았고 민주당에 '범진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는 게 사실과 다른 네이밍이라고 해도, 어쨌든 4월 11일 조간신문에 '보수의 패배'라는 타이틀이 뽑히는 것만으로 '진짜' 진보 의제를 추진하기 위한 기회도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까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당연론적 보수'가 주도권을 잡은 상징적 사건으로서 언급했다. 이 선거의 의미 중 하나는 민주당 단체장들의 성범죄에 대한 심판이었으므로, 페미니즘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선거를 계기로 페미니즘 논의가 확대되기는 커녕 오히려 안티페미니스트들이 '보수주의'의 승리를 확인한 것을 계기로 기세를 올렸다. 최근의 '뿌리 사태'로까지 이어졌던 남초 사이트에서 온갖 대상에 대해 생트집을 잡아 '남성혐오'로 몰아가는 흐름의 시발점이 이 즈음부터였다. 선거의 승패는 실제로 거기에 무엇이 개입되었느냐와 별개로, 그 결과 자체만으로 다시 담론장에서의 우열을 결정짓는 데 영향을 준다.
만약 선거에서 보수가 크게 패하고 '범진보'가 크게 이긴다고 하면, 실제로 거기에 무슨 요인이 개입되었건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진보의 승리와 보수의 패배'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는 실제로 윤석열의 실패가 '당연론적 보수주의' 때문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 '당연함'에 균열을 내기에는 충분하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탄핵도 박근혜의 보수주의 정책이 실패해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보기 어려웠지만, 박근혜의 축출은 진보주의 정책을 위한 기회의 장을 열어줬었다. 현실이 어떻든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를 '보수주의 정부'로, 민주당을 '(상대적) 진보주의 세력'으로 받아들이며, 이 네이밍만으로 둘 간의 승패는 실제 담론장에서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 구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문제는 '보수의 실패'로 '진보주의(라고 이름붙은 것들)'을 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했을 때 민주당이 무슨 '진보적' 정책을 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있는지가 의문이다. 위에도 썼지만 조국혁신당은 '진보주의'를 심히 이상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지고, 녹색정의당은 원외가 되거나 설령 원내에 남더라도 다음 국회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며, 진보당은 현 시점에서 민주당과 각을 세우기보다는 민주당에 밀착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며 그러고 있다. 2017년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시민사회 사이에는 미약하게나마 동류의식이 있었으나, 2024년 시점에서는 서로 적대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관료적인 유능함에 안주하지 않고 '진보주의'를 좇도록 견인할 수 있는 동력이 존재할까?
이재명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해 최근 비판도 많이 했지만, 그가 '승리' 이후의 '진보'에 대해 다른 당내 경쟁자들보다는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길 기대해보면서, 나는 투표를 하고, 조마조마하면서 개표 결과를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