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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정의당 권수정 후보의 지역구 득표율은 1.83%였다. 물론 지역구 선거는 비례대표 선거에 비해 소수정당에 투표할 동인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중 여론조사가 진교훈 민주당 후보의 낙승을 점쳤던 만큼 '전략적 투표' 압력이 상대적으로 덜했고, 권수정 후보는 비례대표 서울시의원을 지내며 이미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바 있었음을 고려하면 심각한 부진이다. 이 선거의 패배 이후 정의당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고 '선거연합정당'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지만 여전히 신통찮아 보인다.
한편으로 민주당 지지자들과 정의당 지지자들의 사이는 이미 더 벌어질 데도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민주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의당 지지자들은 정의당 몰락의 시발점을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선을 긋지 못한 데서 찾는다. 반대로 정의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21대 총선 이후 정의당이 민주당과 각을 세우면서 '피아식별'을 못한 데 탓을 돌린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리고 정의당의 오늘날 부진의 원인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I. '야권연대'의 출발
더불어민주당은 빈말로라도 사회주의를 지향한 적이 없으며 노동자 정당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구의 진보정당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하지만 우리가 대한민국 유권자를 상대로 의회민주주의에서 표를 얻겠다는 스탠스인 한, 2023년 현재 민주당이 대한민국에서 (상대적) '진보'를 대표하는 세력인 것도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정의당에 '민주당보다 선명한 진보정당'으로서의 모습을 원한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에 진출한 참여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범여권'으로 묶는 이는 별로 없었다. '진보 진영' 인사들은 참여정부가 스스로를 '진보'로 자칭하는 데 대해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야당'으로서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현실적으로 보수정권이라는 거악에 맞서 '덜 선명한 진보정당'과 '더 선명한 진보정당'이 연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2010년 5회 지선에서 민주당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진보정당과 적극적인 단일화를 진행했으며, 많은 지역에서 이는 성공을 거두어 야권은 지방선거에서 판정승을 거두었으며, '범야권' 스스로도 야권연대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한편으로 민주당 지지자들과 정의당 지지자들의 사이는 이미 더 벌어질 데도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민주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의당 지지자들은 정의당 몰락의 시발점을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선을 긋지 못한 데서 찾는다. 반대로 정의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21대 총선 이후 정의당이 민주당과 각을 세우면서 '피아식별'을 못한 데 탓을 돌린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리고 정의당의 오늘날 부진의 원인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일까?
I. '야권연대'의 출발
더불어민주당은 빈말로라도 사회주의를 지향한 적이 없으며 노동자 정당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구의 진보정당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하지만 우리가 대한민국 유권자를 상대로 의회민주주의에서 표를 얻겠다는 스탠스인 한, 2023년 현재 민주당이 대한민국에서 (상대적) '진보'를 대표하는 세력인 것도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정의당에 '민주당보다 선명한 진보정당'으로서의 모습을 원한다.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에 진출한 참여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범여권'으로 묶는 이는 별로 없었다. '진보 진영' 인사들은 참여정부가 스스로를 '진보'로 자칭하는 데 대해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야당'으로서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현실적으로 보수정권이라는 거악에 맞서 '덜 선명한 진보정당'과 '더 선명한 진보정당'이 연대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2010년 5회 지선에서 민주당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진보정당과 적극적인 단일화를 진행했으며, 많은 지역에서 이는 성공을 거두어 야권은 지방선거에서 판정승을 거두었으며, '범야권' 스스로도 야권연대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이듬해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야권은 하나로 뭉쳤다. 민주당의 박영선 후보와 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는 안철수의 '깜짝 양보를 받았던' 무소속 박원순 후보와 단일화했고, 이후 박원순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넉넉히 이기고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물론 트위터 등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진보정당 지지자들에 대해 아직도 쓰는 명칭인 '진신류'라는 말이 이 당시 '진보신당'에서 유래한 것이듯이, 내부적으로 지지자들 간의 감정의 골은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정치인들 간에는 공조를 이루었고, 지지자들은 단일화에 승복하고 표를 몰아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권연대는 이듬해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계열은 민주통합당, 진보 계열은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헤쳐모여를 겪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적극적인 야권단일화를 추진했지만, 이 과정에서 각종 잡음이 벌어지며 마이너스로 작용하기도 했다. 선거 이후 진보정당은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와 진보정의당의 분당을 겪으면서 몸살을 앓았고, 그래도 이 와중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제도권 진보정당들은 모두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정권교체에 힘을 모았지만 박근혜의 당선을 막지 못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는 정의당과의 당대당 연대에 부정적인 시각을 고수했고, 실제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지역구 고양시 갑에 민주당은 독자 후보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창원시 성산구의 노회찬 후보는 민주당 허성무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하고 당선되는 등 지역 차원에서의 야권연대는 여전히 활발하게 일어났고, 상술한 고양시 갑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치며 유권자들은 '전략적 투표'를 했다. 당대당 연대는 없어도 야권 내에서의 일종의 연대의식은 유효했다.
II. 집권여당 민주당과 정의당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이 끌어내려지고 민주당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였다. 한편 정의당 심상정 후보 역시 진보정당의 역대 최고 대선 득표율인 6.17%를 얻으며 선전했다. 이제 더 이상 '정권의 폭정에 맞선 야권연대'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실현되진 않았지만 심상정 의원의 입각설이 돌았고,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2019년 이전의 정의당의 행보에 대해선 민주당 지지자들이 과한 피해의식을 갖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정의당이 반대한 국무위원 후보자는 낙마한다는 '정의당 데스노트'라는 말은 정의당이 무슨 유세를 부려서 나온 말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과 정의당이 그만큼 가까웠기 때문에 '정의당조차도' 반대하면 낙마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이런 말이 나온 것 자체가 당시 정의당과 민주당의 관계가 괜찮았음을 보여준다.
물론 트위터 등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진보정당 지지자들에 대해 아직도 쓰는 명칭인 '진신류'라는 말이 이 당시 '진보신당'에서 유래한 것이듯이, 내부적으로 지지자들 간의 감정의 골은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정치인들 간에는 공조를 이루었고, 지지자들은 단일화에 승복하고 표를 몰아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권연대는 이듬해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계열은 민주통합당, 진보 계열은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헤쳐모여를 겪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적극적인 야권단일화를 추진했지만, 이 과정에서 각종 잡음이 벌어지며 마이너스로 작용하기도 했다. 선거 이후 진보정당은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와 진보정의당의 분당을 겪으면서 몸살을 앓았고, 그래도 이 와중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제도권 진보정당들은 모두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정권교체에 힘을 모았지만 박근혜의 당선을 막지 못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는 정의당과의 당대당 연대에 부정적인 시각을 고수했고, 실제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지역구 고양시 갑에 민주당은 독자 후보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창원시 성산구의 노회찬 후보는 민주당 허성무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하고 당선되는 등 지역 차원에서의 야권연대는 여전히 활발하게 일어났고, 상술한 고양시 갑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치며 유권자들은 '전략적 투표'를 했다. 당대당 연대는 없어도 야권 내에서의 일종의 연대의식은 유효했다.
II. 집권여당 민주당과 정의당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이 끌어내려지고 민주당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였다. 한편 정의당 심상정 후보 역시 진보정당의 역대 최고 대선 득표율인 6.17%를 얻으며 선전했다. 이제 더 이상 '정권의 폭정에 맞선 야권연대'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실현되진 않았지만 심상정 의원의 입각설이 돌았고,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2019년 이전의 정의당의 행보에 대해선 민주당 지지자들이 과한 피해의식을 갖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정의당이 반대한 국무위원 후보자는 낙마한다는 '정의당 데스노트'라는 말은 정의당이 무슨 유세를 부려서 나온 말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과 정의당이 그만큼 가까웠기 때문에 '정의당조차도' 반대하면 낙마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이런 말이 나온 것 자체가 당시 정의당과 민주당의 관계가 괜찮았음을 보여준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도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각을 세우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으며, 자유한국당에게로 비판을 집중하면서 '5비2락', '제1야당 교체'와 같은 구호를 내세웠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역사적인 압승을 거두었고, 정의당 또한 광역비례 합산 8.97%를 득표하며 나름대로 선전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의당은 당의 기둥 중 하나였던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는다. 개인적으로 입을 열 수 없는 죽은 사람과 비교하며 산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으므로 노회찬과 비교해 현재 정의당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든 노회찬의 죽음은 정의당에 큰 손실이었고,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추모 분위기 속에서 정의당은 잠시나마 가파른 지지율 상승을 겪기도 했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정권 초보다 떨어진 후에도 민주당과 정의당의 공조는 계속되었다. 故 노회찬 의원의 공석을 채우기 위한 2019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권민호 후보는 정의당 여영국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했고. '범진보 단일후보' 여영국 후보는 아슬아슬하게 당선되면서 정의당의 의석을 지켜냈다. 별 일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여당' 민주당과 '야당' 정의당이 공식적으로 단일화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함께 야당이던 시절 유지되었던 공조 전선은 민주당이 여당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이런 민주당과 정의당의 공조 분위기가 급기야는 오늘날 정의당의 많은 이들이 잘못이었다고 지적하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임명에 동의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조국이 비록 검찰 권력을 건드린 것으로 인해 과하게 공격받은 측면이 있긴 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공직자가 되기에 부적절한 처신을 여러 차례 해온 것 또한 사실이라고 본다. 따라서 정의당이 조국 임명에 대해 협조적으로 나온 것에 대해 진보정당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렸다는 도덕적 비판은 정당하다.
그런데 정의당이 '잘못했다'는 당위의 판단과 그것으로 정의당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은 서로 별개의 문제이다. 나는 이 사건이 정의당에 무슨 치명적인 지지층 이반을 입혔다는 주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보면 조국 사태가 절정이던 9월~10월 정의당의 지지율은 이전 대비 오차범위 내에서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그 정도 수준에서 횡보했고, 그마저도 연말에는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로 많은 정의당 인사들이 이 사건이 정의당 위기의 시초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다른 이유가 더 크다고 본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언급하겠다.
III. 위성정당 사태와 21대 총선에서의 '실패'?
그랬던 정의당과 민주당이 틀어지기 시작한 계기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리라고 본다. 이 사건이 누구의 잘못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민주당과 정의당 둘 다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일단 내가 개인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이전에 썼던 바 있으니까 생략한다. 그 전제 하에서 우선 여소야대의 국회 구도를 무기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민주당에 요구한 것은 정의당이었다. (물론 공수처법을 비롯해 민주당의 각종 의제에 협조하는 것을 당근으로 내걸기는 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에 대한 우려는 선거법 개정 단계에서 이미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는데, 당시 정의당 인사들의 반응은 '자유한국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역풍으로 총선 폭망할 것이니 상관없다' 따위의 안이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민주당이 이 문제에서 '억지로 연동형을 한' 무결한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소수정당들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 개정을 요구한 게 딱히 이때만 있었던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적어도 당시에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들은 어차피 모두 공수처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설령 민주당이 연동형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정의당이 '공수처에 반대해서 보복' 같은 걸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와 다르게 이번에는 민주당이 선거제 개편을 덥썩 받은 것은 민주당 내, 더 정확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동형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공수처법이 민주당과 정의당 모두 동의하는 것이었고, 정의당이 '선거제를 위해 마지못해' 공수처에 찬성한 게 아니듯이, 민주당도 '공수처를 위해 마지못해' 연동형 비례에 찬성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역시나 선거제 개편에 동조해놓고 나중에 가서 뒤늦게 위성정당 만들기에 동참한 민주당의 태도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어쨌든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정의당은 자신들이 '연동형을 위해' 상술한 조국 임명 찬성을 비롯해 여러모로 민주당에 협조해줬는데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민주당 역시 자신들에게 각을 세우는 정의당에 대한 반감을 키워갔고, 당연히 공식적인 범진보 연대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원시 성산구 여영국 의원은 이번에는 민주당과의 단일화가 불발되며 낙선의 쓴 잔을 들이켰으며, 인천 연수구 을에 나선 이정미 의원은 단일화가 불발되었음에도 민주당 정일영 후보가 당선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한편 심상정 의원은 생환했지만, 지난 선거와 달리 민주당 문명순 후보가 24%나 득표하며 민주당 지지층 내의 反정의당 정서가 상당해졌음이 드러났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민주당이 이 문제에서 '억지로 연동형을 한' 무결한 피해자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소수정당들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 개정을 요구한 게 딱히 이때만 있었던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적어도 당시에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정당들은 어차피 모두 공수처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설령 민주당이 연동형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정의당이 '공수처에 반대해서 보복' 같은 걸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와 다르게 이번에는 민주당이 선거제 개편을 덥썩 받은 것은 민주당 내, 더 정확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동형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공수처법이 민주당과 정의당 모두 동의하는 것이었고, 정의당이 '선거제를 위해 마지못해' 공수처에 찬성한 게 아니듯이, 민주당도 '공수처를 위해 마지못해' 연동형 비례에 찬성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역시나 선거제 개편에 동조해놓고 나중에 가서 뒤늦게 위성정당 만들기에 동참한 민주당의 태도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어쨌든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정의당은 자신들이 '연동형을 위해' 상술한 조국 임명 찬성을 비롯해 여러모로 민주당에 협조해줬는데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민주당 역시 자신들에게 각을 세우는 정의당에 대한 반감을 키워갔고, 당연히 공식적인 범진보 연대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원시 성산구 여영국 의원은 이번에는 민주당과의 단일화가 불발되며 낙선의 쓴 잔을 들이켰으며, 인천 연수구 을에 나선 이정미 의원은 단일화가 불발되었음에도 민주당 정일영 후보가 당선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한편 심상정 의원은 생환했지만, 지난 선거와 달리 민주당 문명순 후보가 24%나 득표하며 민주당 지지층 내의 反정의당 정서가 상당해졌음이 드러났다.
선거 결과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은 심상정 의원 1명 당선, 비례대표 득표는 9.67%로 5석, 총 6석을 획득했다. 많은 이들이 이를 '실패'라고 규정했지만, 나는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실패'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의석 6석만 봐서는 제자리걸음 같지만, 이 총선에서 정의당이 획득한 비례대표 득표율 9.67%는 20대 총선의 7.23%와 비교하면 분명히 성장한 것이었고 심지어 7회 지선의 광역비례 합산 8.97%보다도 높았다. 노회찬이라는 당의 큰 기둥이 사라졌으며, 민주당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민주당 지지층이 소위 '개평' 떼어 주듯이 주는 비례대표를 기대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9.67% 득표는 오히려 상당한 선전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당시 새 선거법 하에서 치르는 선거에 대한 정의당의 기대가 너무 컸고, 그것이 양당의 위성정당으로 인해 '배신'당했기에 실망 또한 컸을 뿐이다.
문제는 정의당 스스로가, 2020년 시점에서 정의당이 어찌할 수 없었던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를 '실패'라고 규정하고 '성공'을 위해서는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요상한 결론을 내린 데서 출발했다. 그 '실패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는 자연스럽게 '민주당 때문에 선거에서 실패했다'는 감정적 원한이 개입된다. 그 결과 "조국을 옹호해서 지지층이 떠났다" = "민주당과 밀착해서 지지층이 떠났다" = "민주당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핀트가 좀 어긋난 '문제 해결책'을 낸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정의당과 민주당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IV. '진보'의 위기와 정의당의 위기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얻은 비례대표 9.67%는 엄연히 '선전'이라고 했다. 시계를 잠깐 2년 후로 돌려보면 2022년 20대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5년 전의 1/3 수준인 2.37% 득표에 그치고, 3달 후 지선에서의 광역비례 합산 득표율은 4.14%까지 떨어진다. 2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 시기 정의당의 지지율 하락은 정의당이 민주당과 각을 세워서 '정의당에 우호적인 범민주 지지층'이 떠난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밀착하건 거리를 두건 간에 결국 정의당은 기본적으로 '진보' 정당이다. 정의당과 민주당이 '진보'의 파이를 어떻게 나눠먹느냐의 문제 이전에 '진보'의 파이가 작아지면 의미가 없다.
문제는 정의당 스스로가, 2020년 시점에서 정의당이 어찌할 수 없었던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나름대로 괜찮은 결과를 '실패'라고 규정하고 '성공'을 위해서는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요상한 결론을 내린 데서 출발했다. 그 '실패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는 자연스럽게 '민주당 때문에 선거에서 실패했다'는 감정적 원한이 개입된다. 그 결과 "조국을 옹호해서 지지층이 떠났다" = "민주당과 밀착해서 지지층이 떠났다" = "민주당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핀트가 좀 어긋난 '문제 해결책'을 낸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정의당과 민주당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다.
IV. '진보'의 위기와 정의당의 위기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얻은 비례대표 9.67%는 엄연히 '선전'이라고 했다. 시계를 잠깐 2년 후로 돌려보면 2022년 20대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5년 전의 1/3 수준인 2.37% 득표에 그치고, 3달 후 지선에서의 광역비례 합산 득표율은 4.14%까지 떨어진다. 2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 시기 정의당의 지지율 하락은 정의당이 민주당과 각을 세워서 '정의당에 우호적인 범민주 지지층'이 떠난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밀착하건 거리를 두건 간에 결국 정의당은 기본적으로 '진보' 정당이다. 정의당과 민주당이 '진보'의 파이를 어떻게 나눠먹느냐의 문제 이전에 '진보'의 파이가 작아지면 의미가 없다.
2020년 1월에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규정하는 유권자는 29%였다. 2021년 12월에는 그 비율이 23%까지 줄어 있었다. 통계를 볼 것도 없이, 2020년 하반기~2021년을 사로잡았던 키워드가 뭐였는지 기억을 돌이켜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공정'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능력지상주의가 청년세대를 지배했고, 그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이준석에 대한 열광이 절정에 달하던 시대였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는 단순히 민주당이 단독으로 심판받은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보수화가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사회가 우경화되면 좌파 정당이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좌파 정당이 설 공간은 좁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적 우경화의 원인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불황 등 불가항력적인 요인도 존재했지만, 굳이 책임을 정치세력에게 묻자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실망에 있지, 정의당이 사회적 우경화에 있어 뭔가 역할을 할 힘은 없었다. 이 시기 정의당의 지지율 하락은 일단 정의당 입장에서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컸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정의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21대 총선에서 '실패'했으니 민주당과 거리를 둬야 한다!" → 근데 지지율이 안 오르는데? → "더 가열차게 거리를 둬야 한다!"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는 점이다. 거리를 두는 게 합리적이다 아니다를 떠나 본질이 아닌 사안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점이 문제이다.
V. 복원되지 않은 야권연대
악화된 두 당의 관계를 반영하듯 2022년 20대 대선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간 단일화는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5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재명과 심상정의 단일화 불발이 결과를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대 대선은 '누가 봐도 뻔한' 선거가 아니었지만, '심상정의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이재명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없는 심상정을 찍었다는 것은 그로 인해 윤석열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일종의 미필적 고의로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3번을 찍은 유권자를 비난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그들은 심상정이 있든 없든 어차피 이재명을 찍을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정의당의 당리당략 입장에서 완주가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 있다. 만약 심상정이 이재명 측으로 단일화를 해서 이재명에게 '빚을 지웠다'고 하면, 이재명이 이길 경우 어떤 식으로든 지분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설령 이재명이 졌다고 해도 대선 패배의 책임을 온전히 민주당에 덮어씌우면서 대안세력으로서 입지를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심상정과 정의당이 완주를 택한 건 어떠한 정무적인 판단보다는 위성정당 사태에 대해 남아있는 감정적인 분노와 배신감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6월 지방선거에서 같이 야당이 된 민주당과 정의당은 사이좋게 망했다. 만약 심상정이 단일화를 택했다면 이재명이 이겼든 졌든 지방선거에서 표를 요구할 명분이 조금 더 있었으리라고 보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위에서 서술했듯 워낙 사회가 총보수화되었던 시기였고, 윤석열 정부의 허니문 선거였으니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사회가 우경화되면 좌파 정당이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좌파 정당이 설 공간은 좁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적 우경화의 원인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불황 등 불가항력적인 요인도 존재했지만, 굳이 책임을 정치세력에게 묻자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실망에 있지, 정의당이 사회적 우경화에 있어 뭔가 역할을 할 힘은 없었다. 이 시기 정의당의 지지율 하락은 일단 정의당 입장에서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컸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정의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21대 총선에서 '실패'했으니 민주당과 거리를 둬야 한다!" → 근데 지지율이 안 오르는데? → "더 가열차게 거리를 둬야 한다!"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는 점이다. 거리를 두는 게 합리적이다 아니다를 떠나 본질이 아닌 사안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점이 문제이다.
V. 복원되지 않은 야권연대
악화된 두 당의 관계를 반영하듯 2022년 20대 대선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간 단일화는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5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재명과 심상정의 단일화 불발이 결과를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대 대선은 '누가 봐도 뻔한' 선거가 아니었지만, '심상정의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이재명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없는 심상정을 찍었다는 것은 그로 인해 윤석열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일종의 미필적 고의로 봐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3번을 찍은 유권자를 비난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그들은 심상정이 있든 없든 어차피 이재명을 찍을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정의당의 당리당략 입장에서 완주가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 있다. 만약 심상정이 이재명 측으로 단일화를 해서 이재명에게 '빚을 지웠다'고 하면, 이재명이 이길 경우 어떤 식으로든 지분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설령 이재명이 졌다고 해도 대선 패배의 책임을 온전히 민주당에 덮어씌우면서 대안세력으로서 입지를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심상정과 정의당이 완주를 택한 건 어떠한 정무적인 판단보다는 위성정당 사태에 대해 남아있는 감정적인 분노와 배신감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6월 지방선거에서 같이 야당이 된 민주당과 정의당은 사이좋게 망했다. 만약 심상정이 단일화를 택했다면 이재명이 이겼든 졌든 지방선거에서 표를 요구할 명분이 조금 더 있었으리라고 보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위에서 서술했듯 워낙 사회가 총보수화되었던 시기였고, 윤석열 정부의 허니문 선거였으니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수 진영의 호조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깔끔하지 못한 축출과 이후 이어진 윤석열 정부의 각종 실정으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지지도는 이내 추락했고, 그로기 상태였던 민주당은 그 반사이익으로 원기를 상당부분 회복했다. 하지만 그 반사이익을 정의당은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의 집권당이었던 시절에는 '진보정당' 정의당이 민주당과 각을 세우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집권여당은 보수정당 국민의힘인데, 정의당 지도부는 여전히 민주당에 대해 각을 세우는 기조를 이어갔다. 정의당이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도 많이 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정의당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당론으로 찬성한 것을 비롯해, 류호정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의 '품격 있는 토론' 따위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류호정 의원이 현재 정의당 지도부와 각을 세우고 독자행동을 하고 있단 건 알고 있으나 대중은 보통 거기까지 신경쓰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 反국민의힘보다 反민주당을 우선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주지했다시피 사람들이 정의당에 원하는 건 '민주당보다 선명한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에 실망해 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사람들은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에 맞서는 야당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당이 윤석열 정부 심판론의 반사이익을 얻으려면 '민주당보다 선명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정의당은 '선명 야당'의 모습보다 오히려 '중도층 공략'에 치중하는 듯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였다. 정의당은 코어를 확보한 채 중도층을 공략해야 하는 거대 양당과는 상황이 다르다. 정의당이 '민주당보다 선명한 야당'이 아니라면, 이전과 달리 '윤석열 정부에 대한 선명한 심판'을 원하는 사람들이 정의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의당의 위기의 태동은 일정 부분 불가항력이었다면, 정의당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정의당 자신의 무능과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VI. '진보정당' 정의당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가 아니므로 모든 사안에서 민주당과 동일한 입장을 취할 필요는 물론 없다. 정의당의 민주당 비판에 대해 그동안 민주당 지지자들이 과민반응해온 측면이 상당부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제3당'이기 이전에 '진보정당'이고, 보수 정권 윤석열 정부와는 대척점에 있는 야당이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민주당 2중대여서도 아니고 민주당과 각을 세워서도 아니다. 단지 '진보'의 세가 위축되었기 때문에 '진보 정당' 정의당도 자연히 위축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보수가 스스로의 실책으로 판을 말아먹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정의당이 당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건, 오늘날 정의당이 사람들에게 '보수에 맞서는 진보'로 인식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의당 내에서는 '민주당 2중대를 탈피해야 당이 살아난다'며 핀트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 술 더 떠서 '민주당의 오른쪽으로 가야 당이 산다'며 당을 깨고 나가려는 세력도 있다. 현실적으로 정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중 중에 딱히 진보적이진 않지만 그냥 '양당은 싫은' 유권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가령 본인의 모친은 별로 진보적인 분이 아닌데도 '그래도 노동자 정당이 필요하다'라며 정의당에 묘한 호의를 갖고 계신다.) 하지만 '그냥 양당이 싫다'를 정당의 생존전략으로 내세우는 건 지속가능할 수 없다. 당장 이준석 신당 등이 생기면 '양당이 싫은 정치혐오층'에게 정의당이 이준석 신당에 비해 무슨 비교우위가 있는가?
비단 정의당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은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그에 맞게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의당이 민주당에 대한 감정적 원한에 사로잡혀 '민주당의 왼쪽'이라는 포지션조차 버리려 한다면 정의당이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요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의 집권당이었던 시절에는 '진보정당' 정의당이 민주당과 각을 세우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집권여당은 보수정당 국민의힘인데, 정의당 지도부는 여전히 민주당에 대해 각을 세우는 기조를 이어갔다. 정의당이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도 많이 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정의당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당론으로 찬성한 것을 비롯해, 류호정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의 '품격 있는 토론' 따위로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류호정 의원이 현재 정의당 지도부와 각을 세우고 독자행동을 하고 있단 건 알고 있으나 대중은 보통 거기까지 신경쓰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 反국민의힘보다 反민주당을 우선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주지했다시피 사람들이 정의당에 원하는 건 '민주당보다 선명한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에 실망해 민주당 지지로 돌아선 사람들은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에 맞서는 야당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당이 윤석열 정부 심판론의 반사이익을 얻으려면 '민주당보다 선명한 야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정의당은 '선명 야당'의 모습보다 오히려 '중도층 공략'에 치중하는 듯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였다. 정의당은 코어를 확보한 채 중도층을 공략해야 하는 거대 양당과는 상황이 다르다. 정의당이 '민주당보다 선명한 야당'이 아니라면, 이전과 달리 '윤석열 정부에 대한 선명한 심판'을 원하는 사람들이 정의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의당의 위기의 태동은 일정 부분 불가항력이었다면, 정의당이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정의당 자신의 무능과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VI. '진보정당' 정의당
정의당은 '민주당 2중대'가 아니므로 모든 사안에서 민주당과 동일한 입장을 취할 필요는 물론 없다. 정의당의 민주당 비판에 대해 그동안 민주당 지지자들이 과민반응해온 측면이 상당부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제3당'이기 이전에 '진보정당'이고, 보수 정권 윤석열 정부와는 대척점에 있는 야당이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은 민주당 2중대여서도 아니고 민주당과 각을 세워서도 아니다. 단지 '진보'의 세가 위축되었기 때문에 '진보 정당' 정의당도 자연히 위축된 것일 뿐이다. 하지만 보수가 스스로의 실책으로 판을 말아먹고 있는 지금에 와서도 정의당이 당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건, 오늘날 정의당이 사람들에게 '보수에 맞서는 진보'로 인식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의당 내에서는 '민주당 2중대를 탈피해야 당이 살아난다'며 핀트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 술 더 떠서 '민주당의 오른쪽으로 가야 당이 산다'며 당을 깨고 나가려는 세력도 있다. 현실적으로 정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중 중에 딱히 진보적이진 않지만 그냥 '양당은 싫은' 유권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가령 본인의 모친은 별로 진보적인 분이 아닌데도 '그래도 노동자 정당이 필요하다'라며 정의당에 묘한 호의를 갖고 계신다.) 하지만 '그냥 양당이 싫다'를 정당의 생존전략으로 내세우는 건 지속가능할 수 없다. 당장 이준석 신당 등이 생기면 '양당이 싫은 정치혐오층'에게 정의당이 이준석 신당에 비해 무슨 비교우위가 있는가?
비단 정의당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은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그에 맞게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의당이 민주당에 대한 감정적 원한에 사로잡혀 '민주당의 왼쪽'이라는 포지션조차 버리려 한다면 정의당이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요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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