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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이 정치인들의 '막말'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그 중 일부는 실제로 공천 취소로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5.18 막말로 논란이 된 대구 중구·남구 도태우 후보를, 더불어민주당은 목함지뢰 막말로 논란이 된 서울 강북구 을 정봉주 후보를 공천 취소했다. 그 다음은 각종 SNS에서의 비하적 발언으로 논란이 된 부산 수영구 장예찬 후보에 대한 공천 취소를 국민의힘이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정치인 장예찬은 내가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고, 알려진 그의 '막말'들을 보면 공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별로 친해지기 싫다는 인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이것을 이유로 당으로부터 후보 자격을 박탈당한다면 그것은 부당하다.

그때 장예찬은 무엇이었는가?

장예찬은 1988년생으로 올해 만 35세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 관련 활동을 하기 시작한 역사는 길지 않다. 장예찬이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 측 '1호 참모'로 영입되었을 때의 한국일보 기사를 보면 그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장씨는 2014년 중도보수성향 웹진 '자유주의'를 발간하며 '청년 보수 논객'으로 이름을 알렸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홍보 고문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온라인 홍보 보좌, 여의도연구원 객원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현재 시사평론가로 방송 등에서 활동 중이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그가 정치와 관련된 활동을 시작한 건 2014년이고, '정치인'이 된 것은 이 때 윤석열 후보 측에 영입된 것이 처음이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아래의 '논란'들을 다시 보자.

20대의 장예찬 ≠ 정치인 장예찬

언론에서 그의 '논란'으로서 조명한 SNS 게시물들이 언제 쓰였는지 알아보자.


각 발언들이 굉장히 상스럽고 비하적이라는 건 굳이 부연하지 않겠다. 장예찬이 2024년에 SNS로 이런 소리를 했다면 나도 그를 공천탈락시키는 데 대해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당시 88년생 장예찬은 24~27세에 불과했으며, 위에 쓴 그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권 정치와 아득히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2012년 24세의 장예찬에게 가서 12년 후에 네가 국회의원 후보가 되니까 SNS를 조심해서 하라고 한다면 코웃음쳤을 것이다. 제도권 정치는 꿈도 꾸지 않았을 20대의 장예찬이 쓴 글에 지금 국회의원 후보 장예찬이 지켜야 할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정당한가?

인터넷 커뮤니티나 각종 SNS를 가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에 위의 장예찬과 비슷하거나 더 심한 수위의 극언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 나는 소시민이고 장예찬은 공인인데 잣대가 같으면 되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2012년의 장예찬이라고 자기가 언젠가 정치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을 리가 없다. 장예찬과 같은 잣대를 적용해서, 지금 인터넷에 '막말'을 쏟아내는 수많은 소시민들에게서 전부 피선거권을 빼앗아야 하는가? 이런 사인(私人) 시절의 SNS 게시물을 하나하나 뜯어내서 망신을 주는 건 폭력적이고, 그걸 이유로 후보 자격을 빼앗겠다는 건 반민주적이다.

'시정잡배'도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있어야


아니 그냥 가혹하다고 하면 되지 반민주적이라니 표현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이론상 나중에 정치인이 돼서 저런 논란에 엮일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려면 10대 20대 때부터 미래를 고려해 말조심 행동조심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아무 인터넷 커뮤니티 애용자 20대를 붙잡고 '너 10년 후에 국회의원 되니까 말 조심해'라고 하면 그걸 진지하게 들을 리가? 당연히 나는 정치권과 연이 없을 줄 알고 열심히 커뮤니티에 할 말 못할 말을 했다가 인생이 뜻밖으로 풀려서 정치권에 들어갔는데 그 과거 발언이 발굴되면 장예찬과 같은 잣대로 공천 탈락이다.

그럼 저 잣대를 누가 충족시킬 수 있을까? 10대 20대 때부터 자기가 정치권과 연이 있을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야 미리 철저히 말조심 행동조심을 했을 것이다. 부모가 정치인이라든가, 아니라도 어떤 식으로 정치권과 끈끈한 커넥션이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런 장기계획을 짤 수 있으리라. 이제 '제2의 장예찬'을 만들지 않고 20대 때부터 품격 있었던 정치인을 보려면 일본에서 하듯이 국회의원들이 어릴 때부터 '세자'를 점지해서 '제왕학'을 교육시켜 '품격 있는 정치인 유망주'를 만들어 물려주면 된다.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장예찬은 인간적으로 별 볼일 없는 한심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품격 있고' '세련된' 도련님들만의 공간이 아니어야 하며, 장예찬과 같은 '한심한 시정잡배'에게도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려 유권자에게 선택받을 권리는 주어져야 한다. 그에게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다면 유권자들이 심판할 것이다. 언론이나 국민의힘 공관위가 아니라.

+덤)
민주당에서는 안산 갑 양문석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발언을 했다며 논란이 되었고,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공천 취소를 요구하기도 했다. 나는 양문석 역시 좋아하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이건 장예찬 건보다도 더 황당하다. 문제의 칼럼은 2008년에 쓰인 것인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이후라면 모를까, 당시 진보좌파 진영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난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내용을 보면 패륜적인 욕설을 한 수준도 아니고 과격하긴 하지만 자기 정견을 밝힌 선인데, 이제는 이것도 '막말'로서 피선거권을 빼앗을 사유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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