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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도 처음에 조국신당 창당 소식을 듣고는 지금의 소나무당(송영길 신당) 같은 예능 정당(...)을 예상했기 때문에 현 상황은 여전히 좀 얼떨떨하다. 하지만 현재 조국혁신당이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연합과 맞먹거나 가끔은 능가하는 비례대표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왜 그런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름대로 생각을 굴려보려 한다. 통계적 근거는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필연적 결말
일단 이 사단을 낳은 원흉은 전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나는 연동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데, 그래도 그렇지 너무 만물을 네가 싫어하는 것과 연결짓는 것 아니냐고?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례대표 10% 지지율을 얻은 당은 곧 국회에서도 10% 의석률을 얻어야 한다!'면서 '민심 그대로 선거제'라는 별명을 붙이곤 했다. 그랬던 분들이 일관성 있게 조국혁신당이 60석 이상의 의석을 얻는 것이 '민심 그대로'라고 생각하고 계실지 심히 의문이다.
간단한 반론을 할 수 있다. 어차피 양당이 다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제3당의 지역구 획득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의석 배분 방식은 병립형과 전혀 다를 게 없어져 연동형 비례의 취지는 무색해진 상황인데, 그럼 병립형이더라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 아니냐는 점이다. 바로 그 '위성정당'이 문제의 근원이다. 병립형 비례였다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을 찍고, 비례대표도 더불어민주당을 찍을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더불어민주당은 없고, 더불어민주연합이 대신 있다. 물론 절대다수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의석 극대화를 위해 위성정당이 필요하다"는 민주당의 논리에 쉽게 수긍했다. 그러나 그 이유로 더불어민주연합을 찍어야 한다면, 어차피 사실상 위성정당으로서 기능하는 조국혁신당을 찍는 것은 왜 안 되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기존대로 '당연히' 지역구도 민주당, 비례도 민주당을 하는 게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이전에 다소 날 선 어조로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공천을 비판한 바가 있다. 일단 더민주연합에는 '민주당이 아닌' 사람이 상당부분 끼기도 했고, (그 당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민주당 이름으로 얻은 의석을 그들에게 '나눠주는' 것에 대해 민주당원이나 지지층의 동의가 없었다는 게 문제이다.) 그 비례대표 명부의 결정 과정도 극히 비민주적이었다. 그래서 더민주연합에 대한 지지 철회까지 가지는 않았을지언정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은 나 말고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여기서 조국혁신당이 등장한다. 이들은 민주당과 합당을 하든, 안 하든 진보당이나 새진보연합 같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았으며, 비례대표 명부 역시 민주적 투표로 결정된다. 강성 지지층은 조국혁신당을 통해 더민주연합보다 더 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국혁신당은 2020년 열린민주당과 비슷한 포지션이지만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우선 열린민주당은 민주당 공천에서 사실상 배제된 복수 인사들의 연합체였던 반면 조국혁신당은 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뚜렷한 구심점이 있다. 또한 2020년 당시 김어준 씨는 열린민주당에 비우호적이었으나, 이번 조국혁신당에는 매우 우호적인 스탠스로 알려져 있다는 차이가 있겠다.
조국혁신당의 '외연 확장'이라는 아이러니
강성 민주당 지지층이 조국혁신당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되었다고 본다. 그러면 더불어민주연합이 받아야 할 비례 표를 갈라먹으므로 민주당 입장에서 껄끄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상 나타나는 현상은 조국혁신당의 등장 이후 오히려 더민주연합+조국혁신당의 총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조국이라는 이름이 중도층에게 매력이 있는 이름인가? 그 반대면 반대였지 전혀 그럴 리는 없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오히려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수치로 확인된다. 대체 왜 이런 기괴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의 본질은 무엇인가? 물론 원칙적으로 4년간 의정활동을 할 국회의원들을 유권자의 손으로 뽑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4월 11일 조간신문 1면에 나올 선거 결과 그 자체로서 정치인과 정파들에게 유권자의 피드백을 전달한다는 점도 중요한 기능이다. 가령 이번 선거 결과로 국민의힘이 단독 과반을 얻는다면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반대로 개헌 저지선이 붕괴된다 해도 역시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중간의 애매한 상태, 지금과 같이 민주당이 단독 과반이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을 뚫을 수는 없는 선에서는 민주당 151석:국민의힘 140석이건 민주당 190석:국민의힘 101석이건 현 상태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의 결과에 대해 언론과 정치인들이 보일 반응이 동일할 리가 없다. 후자로 구성된 국회의 기능이 전자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더라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보다 더 강한 국민적 평가를 내린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론은 꾸준히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역시 여전히 많은 국민에게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다.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을 위시한 제3지대가 한때 많은 기대를 받았던 이유가 이것이리라. 실제로 개혁신당은 창당 직후 상당한 돌풍을 일으켰고, 새로운미래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사정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이들에게 아무 이념이 없다는 점에서 비판적이었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이들이 국회에 가서 4년 내내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도 유권자는 이들을 통해 '양당 모두를 심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만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선거가 다가오고 의석수를 불리기 위해 양당에서 '나가떨어진' 의원들을 무원칙하게 이삭줍기하고, 난데없이 합당을 발표해 지지층 간 반목을 불렀다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갈라지는 일련의 과정은 전형적인 구태 정치의 그것이었다. 이념이 없이 '신선함'만을 무기로 시작한 제3지대는 그것이 '구태스러워진' 순간 급격히 그 동력을 잃었다.
그 타이밍에 조국혁신당이 등장한다. 정의당은 '정권 심판론'을 담아낼 수 있는 야당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데 실패했고, 개혁신당/새로운미래는 이도저도 아닌 구태 정치일 뿐이다. 이들과 달리 조국혁신당은 명백하게 윤석열 정부와 각을 세우는 야당이지만,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 그 자체는 아니다.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역구 공천 파동이건 비례대표의 비민주적 배분이건 그냥 이재명 대표의 개인적 됨됨이 문제이건 간에 어떤 이유로든 이재명 대표에게 전적인 신임을 보내기는 주저스러운 이들에게, '명확한 윤석열 심판 의사'+'이재명 체제에 대한 전적인 신임은 아님'을 표시할 통로가 생긴 것이다.
'막산이' 이재명에 대한 반감
그럼 이제 조국혁신당 덕분에 야권은 대승할 것이고 윤석열 정권을 더 확실히 심판할 것이다. 잘됐네? 하지만 이를 썩 좋게 보기만은 어려운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공천이 돌아가는 걸 보면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정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위에서 이재명 대표를 싫어할 만한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이재명 대표의 개인적 됨됨이 문제'에 밑줄을 그어놨는데, 이 이유로 이재명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조국신당을 자기 생각을 담아낼 그릇으로 쓰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소위 '형수 욕설' 녹취이건 기타 개인적 스캔들이건 무슨 이유건 간에 이재명 대표가 '인간적으로 돼먹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물론 그냥 이재명이 돼먹지 못한 인간 쓰레기가 맞을 수도 있지만 생각해 봐야 하는 지점이 있다. 가령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던 시점부터 이미 대권주자군의 일원이었다. 반면 이재명은 어떠했나? 최근에야 자치단체장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재명이 처음 성남시장이 될 2010년 당시에 기초자치단체장을 대권주자라고 하면 다들 코웃음을 쳤을 테고, 이재명도 오랫동안 대권을 비롯한 '큰 정치'에 대해 딱히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성남시 지방정치인으로서 여생을 보낼 계획만 세워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여러 기회와 운이 겹치면서 중앙정계의 최중심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고, 자연히 '큰 정치'를 할 계획이 없던 시절의, '큰 정치인'들은 보이지 않을 '추한' 면모가 그의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내가 이러한 이유로 조국혁신당을 택한 그룹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내가 장예찬의 과거 발언을 이유로 그를 공천 취소하는 데 반대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재명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붙인 비하하는 별명 중 '막산이'라는 게 있다. 저렇게 거칠게 '막 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느냐는 논조이다. 이재명 대표가 물론 법적으로 잘못한 게 있다면 그 책임을 져야겠지만, 단순히 '막 살았다'는 것 자체가 대권주자로서 결격사유가 된다면 커리어 초기부터 '큰 정치'를 염두에 뒀던, '3루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이런 식의 '품성론'을 진보좌파라는 사람이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조국혁신당 돌풍을 우려하는 이유
정리하자면 조국혁신당 지지층은 크게 '민주당 강성 지지층' + '윤석열 정권 심판에 공감하지만 이재명 대표를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 야권 지지층'으로 나눠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그룹이 자신의 생각을 투사할 통로로 둘 다 조국을 쓰고 있는 셈이다. 목소리는 전자가 더 크겠지만, 조국 대표의 말대로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쪽은 후자이다. 그리고 전자와 후자는 사실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교집합도 일정부분 존재한다. 분명한 민주당 지지자지만 이재명보다 조국이 더 친근한 친문 성향 지지자라든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만 표시를 어떤 식으로든 하고 싶은 민주당 지지자라든가...
문제는 전자(강성 지지층)가 외견상 강성으로 보이지만 실상 이념적으로 급진적 진보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검찰 개혁과 같은 특정한 의제에서만 '강성'일 뿐이며, 대다수의 정책적 의제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거나 사람마다 스탠스가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이 후자(반윤비명)와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뒤섞이면서, 저런 '품성론'에 근거해 이재명을 꺼렸던 사람들의 은근한 보수성이 곧 '강성 지지층'의 스탠스로 전유되어버릴 가능성이 우려스럽다. 외견상 강성이지만 실상 이념적으로 진보적이지는 않은 기괴한 유권자 집단이 야권의 상당한 파이를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조국 대표 개인은 (본인의 언행불일치와 별개로) 일단 뚜렷이 진보좌파적인 스탠스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이나, '이재명을 대신해' 조국을 대안으로 고르는 사람들은 본인은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은연중에 저런 '품성론'과 같은 보수적인 가치관을 내면화한 경우가 상당히 많을지도 모른다. 조국혁신당을 단순하게만 바라보기 어려운, 그리고 그것이 야권의 승리에 이바지한다고 해서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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