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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신도시는 정말 '진보적'인 공간일까?
22대 총선 최고의 이변의 선거구는 단연 경기도 화성시 을일 것이다. 수도권에서 손에 꼽히는 민주당 텃밭인 동탄신도시에서, 처음에는 여론조사상 2위를 지키는 것조차도 힘겨워했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42.41% 득표율로 민주당 공영운 후보(39.73%)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개인적으로 정치인 이준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이 글에서 다루려는 주제가 이준석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므로 생략한다.
일단 이 결과를 두고 화성시 을 유권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이준석의 깜짝 승리에는 이런저런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공영운 후보 개인의 경쟁력 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화성시 을 유권자들이 특별히 민주당을 불신임했다기보다 단지 이준석 본인이 유세에서 말했듯이 "윤석열 대통령 술 맛을 가장 떨어뜨릴 후보"가 이준석이라는 판단 하에 그를 전략적으로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고로 이 결과를 갖고 '동탄이 보수화되었다'는 식의 설명을 하는 건 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야도 서울 대신 야도 경기의 시대로
'여촌야도'라는 말은 오랫동안 정치권의 진리로 통용되어왔고, 그 정점에 수도 서울이 있었다. 무려 1956년 3대 대선에서부터 죽은 신익희에게 던진 무효표가 이승만의 표보다 많았던 건 유명한 일화이고, 이후로도 서울은 꾸준히 민주당계 야당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보내왔다. 그런 서울이 직선제 대선에서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2007년 17대 대선과 2022년 20대 대선 단 두 번 뿐이었다.
전자는 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워낙 압승한 선거니까 그렇다 치고, 후자는 다들 기억하시다시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초접전 끝에 석패한 선거였는데, 서울로부터 버림받고도 민주당 후보가 접전을 펼쳤다는 건 사실 정치사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어떻게 된 것인가? 물론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그만큼 경기도에서 메꿨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가능했다. 불과 10년 전의 2012년 대선까지만 해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서울에서 이기고 경기에서 졌는데, 10년 만에 상황이 반대가 된 것이다.
원인은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서울의 집값이 오르면서 계급투표 성향이 짙어지고, 동시에 젊은 층이 대규모 택지지구 개발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진 경기도로 많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 개인이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며 쌓아놓은 기반까지 더해지며 경기도는 호남 다음 가는 민주당의 새로운 텃밭이 되었다. 그렇다고 보수는 경기도의 손실을 서울에서 그만큼 메꿨는가? 일단 2010년 5회 지선(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시장 선거에서 이겼지만 시의회는 민주당이 큰 차이로 다수를 차지했다.)에서도 드러났던, 국민의힘 지지층이 강남 3구라는 좁은 공간에 집중되어 있음에 따른 소선거구제 하에서의 극심한 비효율적 구조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으며, 한강 벨트는 보수의 새로운 기반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이번 총선에서 다시 정권 심판론의 손을 들어줬다. 인구 절반이 몰려 사는 수도권이 완전히 민주당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총선 이후 칼럼에서 "보수층 유권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은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이기는 게 정상이고 진보 정당이 이기는 건 이변이라는 것이다. ... 이제 민주당이 이기는 게 정상이고 국민의힘이 이기는 게 이변이다."라고 썼다. 전통적인 '영남의 호남 대비 인구 우위'를 기반으로 해 보수가 이기고 시작하던 구도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을 장악하면서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한국은 항구적인 '진보 우위'의 사회가 된 것인가? 글쎄다.
'민주당 텃밭' 경기도 신도시가 품고 있는 함정
똑같이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경기도의 행정동 두 개를 비교해보자.
일단 이 결과를 두고 화성시 을 유권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이준석의 깜짝 승리에는 이런저런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공영운 후보 개인의 경쟁력 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화성시 을 유권자들이 특별히 민주당을 불신임했다기보다 단지 이준석 본인이 유세에서 말했듯이 "윤석열 대통령 술 맛을 가장 떨어뜨릴 후보"가 이준석이라는 판단 하에 그를 전략적으로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고로 이 결과를 갖고 '동탄이 보수화되었다'는 식의 설명을 하는 건 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야도 서울 대신 야도 경기의 시대로
'여촌야도'라는 말은 오랫동안 정치권의 진리로 통용되어왔고, 그 정점에 수도 서울이 있었다. 무려 1956년 3대 대선에서부터 죽은 신익희에게 던진 무효표가 이승만의 표보다 많았던 건 유명한 일화이고, 이후로도 서울은 꾸준히 민주당계 야당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보내왔다. 그런 서울이 직선제 대선에서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은 2007년 17대 대선과 2022년 20대 대선 단 두 번 뿐이었다.
전자는 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워낙 압승한 선거니까 그렇다 치고, 후자는 다들 기억하시다시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초접전 끝에 석패한 선거였는데, 서울로부터 버림받고도 민주당 후보가 접전을 펼쳤다는 건 사실 정치사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이다. 어떻게 된 것인가? 물론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그만큼 경기도에서 메꿨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가능했다. 불과 10년 전의 2012년 대선까지만 해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서울에서 이기고 경기에서 졌는데, 10년 만에 상황이 반대가 된 것이다.
원인은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서울의 집값이 오르면서 계급투표 성향이 짙어지고, 동시에 젊은 층이 대규모 택지지구 개발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진 경기도로 많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 개인이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며 쌓아놓은 기반까지 더해지며 경기도는 호남 다음 가는 민주당의 새로운 텃밭이 되었다. 그렇다고 보수는 경기도의 손실을 서울에서 그만큼 메꿨는가? 일단 2010년 5회 지선(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시장 선거에서 이겼지만 시의회는 민주당이 큰 차이로 다수를 차지했다.)에서도 드러났던, 국민의힘 지지층이 강남 3구라는 좁은 공간에 집중되어 있음에 따른 소선거구제 하에서의 극심한 비효율적 구조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으며, 한강 벨트는 보수의 새로운 기반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이번 총선에서 다시 정권 심판론의 손을 들어줬다. 인구 절반이 몰려 사는 수도권이 완전히 민주당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총선 이후 칼럼에서 "보수층 유권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은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이기는 게 정상이고 진보 정당이 이기는 건 이변이라는 것이다. ... 이제 민주당이 이기는 게 정상이고 국민의힘이 이기는 게 이변이다."라고 썼다. 전통적인 '영남의 호남 대비 인구 우위'를 기반으로 해 보수가 이기고 시작하던 구도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을 장악하면서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한국은 항구적인 '진보 우위'의 사회가 된 것인가? 글쎄다.
'민주당 텃밭' 경기도 신도시가 품고 있는 함정
똑같이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되는 경기도의 행정동 두 개를 비교해보자.
- 안산시 단원구 선부3동의 아파트 단지들은 싸면 2억 남짓, 비싸도 4억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박해철 후보(안산시 병)는 54.08%를 득표했다.
- 화성시 동탄2동의 아파트 가격을 네이버 부동산으로 살펴보면 싸게는 5~6억, 비싸게는 7~8억 내지 그 이상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전용기 후보(화성시 정)는 56.91%를 득표했다.
전자는 양자대결이었고 후자는 민주당 출신의 개혁신당 이원욱 후보가 표를 갈라먹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명백하게 동탄2동의 민주당 지지율이 선부3동의 민주당 지지율보다 높다고 봐야 한다. '고소득층일수록 보수정당 지지율이 높다'는 일반적인 도식과는 다른 결과이다. 물론 그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동탄에는 젊은 화이트칼라 유권자가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세대 효과가 계급 효과를 누르는 것일테다. 그러나 이렇게 민주당을 지지할 만한 계층만 '인위적으로' 모아서 만들어진 신도시가 과연 정말로 '진보적'일까?
안산시는 대규모 공단을 끼고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도 많이 사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서 거주하는 공간이다. 반면 동탄신도시에는 특성화고등학교조차 하나도 없다. 이렇게 철저하게 동질적인 사람들만을 모아서 '무균질'로 만들어진 경기도 신도시 유권자들이, 그리고 그들의 표를 받아 당선되는 의원이 과연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진보적' 의정활동에 대한 필요성을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최근 민주당이 진보적인 의제를 잘 말하지 않는 것도 이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서울의 보수화'와 '경기도의 진보화'라는 설명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도 느낀다. 가령 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1%p차로 겨우겨우 살아돌아온 서울 영등포구 을 선거구는 부촌인 여의도동의 존재감이 크지만, 한편으로 (최근에는 재개발도 많이 됐지만) 전통적인 서민 주거지역인 신길동과 '조선족'이 다수 거주하는 것으로 유명한 대림동도 포함하고 있는 선거구이다. 김민석 의원이 지역구 의정활동을 하기 위해선 물론 여의도동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우클릭'스러운 행동도 하겠지만, 동시에 신길동과 대림동의 서민들의 이야기도 듣고 그들을 위한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반면 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넉넉하게 살아돌아온 경기 화성시 정 선거구는 인구구성이 굉장히 균질한 지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전용기 의원은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화이트칼라 유권자들의 이야기만을 들으면 된다. 과연 누가 더 '진보적'인 의정활동을 위한 압력을 많이 받게 될까?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를 야도로서의 경기도
그렇게 경기도 신도시가 사실 '진보적'인 공간이 아닌데도 민주당을 굳건히 지지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다른 것보다 그냥 국민의힘이 무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말에 갑자기 툭 던져진 '메가 서울' 공약이었다. 서울에 편입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장단점이 있으며 그것을 추진해야 할 이유인 핵심적 장점은 무엇인지, 서울특별시의 무분별한 확장이 균형발전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인지,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거나 중구난방인 채로, 그냥 "너희도 '서울 사람'으로 만들어주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라는 식의 얄팍한 사탕발림만을 들이밀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도가 꾸준히 바닥을 기고 있고 총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아무 맥락 없이 '너희들을 서울시민으로 만들어줄게'라고 하면 덜컥 넘어올 거라니 경기도민들을 무슨 먹이 주면 넘어오는 금붕어 취급하는 처사이다. 당연히 이번 총선에서 서울 근교 도시에서 국민의힘이 전패하면서 '메가 서울'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보수가 저런 조악한 방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방식으로 경기도 신도시들이 내재하고 있는 계급적 보수성이라는 약한 고리를 찌른다고 하면 충분히 흔들릴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21대 총선 당시 창릉신도시 계획에 대한 반발로 (실제 의석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일산신도시 지역이 잠시 민주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준석의 당선 역시 보수의 입장에서 경기도에 대한 잠재적 공략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보수가 지역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욕망을 잘 끄집어낸다면 언젠가 경기남부가 새빨갛게 물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럴 수 있는 인력풀이 축적되려면 한참이 걸릴 것 같지만 말이다.
반대로 민주당의 입장에서도 경기도를 막대기만 꽂으면 당선되는 영원한 텃밭 취급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단순히 연이은 선거 승리로 축적된 인력풀의 양적/질적 우위를 기반으로 '지역에 대한 높은 이해'로 승부를 보면 되는가? 그렇다면 경기도 중산층의 보수적인 욕망에 민주당은 철저히 복무해야 하는가? 아니라면 '진보적인 의제'에 그들이 동의하도록 민주당이 앞장서서 이끌 방법이 있는가? 혹은 서울에서 밀려난 만큼 경기도에서 메꾼 것처럼, 수도권에서 점진적인 퇴각을 준비하되 그만큼 충청이나 PK 등 타 지역에서 벌어와야 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무책임한 이야기지만 내가 방구석에서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 같다. 민주당의 누군가는 답을 갖고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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