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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인의 국회 진출은 무조건 바람직할까? by 라인란트 - 얼룩소 alookso

I. '여의도 2시 청년' '586 용퇴'나 '청년 공천' 등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대개 '기성세대 정치인들은 청년세대가 겪는 문제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청년 당사자가 직접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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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여의도 2시 청년'

'586 용퇴'나 '청년 공천' 등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대개 '기성세대 정치인들은 청년세대가 겪는 문제를 이해할 수 없으므로 청년 당사자가 직접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중대한 맹점이 하나 있다. '청년 당사자'가 겪는 문제라는 것이 전혀 단일하지 않으며 성별, 지역, 계층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시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청년이 국회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다양한 '청년 당사자'의 문제를 잘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가령 아무 평범한 대학생 하나를 제비뽑기로 골라서 국회에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청년 정치인에게도 최소한의 '스펙'은 요구되기 마련이다. 청년정치를 비롯한 '정체성 정치'를 옹호하는 근거는 결국 국회의원 본인의 경험이 의정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 다양한 계층의 국민이 겪는 다양한 경험을 대변하기 위해 다양한 계층의 국회의원이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많은 경우 이에 동의하지만 그 계층이 '청년'일 경우 이를 실현하는 데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통상적인 정치권 진출 루트는 일단 자기 본업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 여유가 생기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청년'이라 할 만한 2~30대는 사회에서 본업으로 자리를 잡기에 바쁜 나이이다. 정당의 주요 행사도 상당수가 평일 낮에 열리는 등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들에게 진입장벽이 높다. 2~30대의 나이에 국회에 갈 만한 '스펙'을 쌓으려면 결국 청년기부터 정치활동을 '업'으로 삼아 스펙을 쌓아야 한다. 직업으로서 일찌감치 '정치인'을 택하고 준비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업 정치인'이 일반적으로 20대의 커리어 스타트로서 선호되지도, 대중적이지도 않다는 걸 고려하면 이렇게 젊어서부터 전업 정치인으로 활동한 '청년 정치인'들이 '청년세대가 겪는 문제와 경험'을 대변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일전에 국민의힘 당권 싸움 당시 소위 '청년 정치인'들끼리 서로를 '여의도 2시 청년', '여의도 10시 청년' 따위로 부르며 비방하던 일이 있었다. 해당 스피커들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소 뒷걸음치다 쥐 잡듯 청년정치의 태생적 문제를 짚었다고 볼 수 있다.

II. 이상적인 세대교체와 현실의 문제

다만 인위적으로 무작정 '청년 할당'을 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지, 586세대가 천년만년 살 것은 아니므로 세대 교체 자체는 이루어져야 한다. 이상적으로는 그것이 이런 강제적인 하향식 할당이 아니라, 상향식 공천 하에서 경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부합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변자로서 선거를 통해 민의를 위임받은 인물이다. 국회의원을 선택하는 것은 지역구의 당원과 유권자들이며, 그가 일을 못 했을 때 심판할 권리를 갖는 것도 지역구의 당원과 유권자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인위적인 '세대교체', '중진 용퇴' 따위를 요구하는 것은 대의제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세대교체는 젊은 정치인들이 경선 및 본선에서 기존 정치인들을 '자연스럽게' 밀어냄으로써 '민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여전히 지역구 당원과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을 단순히 나이가 많거나 선수가 많다는 이유로 지도부 결정과 같은 외력이 개입되어 인위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통상적으로 청년들에게 정치권은 매력적인 커리어패스가 아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본업을 내던지고 전업으로 정치권에서 활동한다 해도 '일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정말 잘 돼서 선출직이 된다고 쳐도 이런저런 정치 논리에 따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후순위로 밀린다. 이런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일터에 누가 뛰어들고 싶겠는가?

많은 역량 있는 청년들에게 정치권은 매력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선택지이다. 그럼 청년정치는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시간과 돈이 많은 한량들,즉 '여의도 2시 청년'들의 무대가 되기 쉽다. 이런 한량들에게 자리를 보장해주자는 이야기는 자연히 설득력을 잃는다. 악순환이다.

이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게 선거 때마다 정당들이 으레 하는 '인재영입' 아닐까 싶다. 나는 원래 이러한 인재영입을 굉장히 고깝게 봤었다. 인재를 내부에서 당원과 유권자의 선택을 거치며 키워야지 '번듯한 스펙의 외부인들을 주워와서 전략공천을 주는' 모양새가 대의제에 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문제로 인하여 자생적으로 역량 있는 청년들이 성장해 기성 정치인들을 밀어내고 세대교체를 이루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런 인위적 인재영입은 현 상황에서는 필요악인 측면도 있다고 보인다.

III. '누가'가 아니라 '무엇을'

관건은 이렇게 영입된 '인재'들이 겉돌지 않고 당에, 국회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으면서도 그 전문성을 계속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인재 영입' 형태로 들어온 사람들 상당수가 초선만 하고 정치권에서 퇴장했고, 재선 이상 하면서 당에 남은 사람들은 처음 국회에 들어온 계기는 희미해지고 그냥 '평범한 의원 1'이 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그냥 간판만 조금 더 젊은 사람으로 바꿨을 뿐 하는 일이 똑같은데 '인재 영입'을 한 의미가 별로 없다.

중요한 건 '누가' 의정활동을 하느냐보다도 '무슨' 의정활동을 하느냐이다. '세대교체'가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우선 청년 정치인들 자신이 전문성과 역량이 있어야 하며, 당이 역량 있는 청년들을 데려왔다면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청년 의원의 머릿수만 늘리자는 것은 '여의도 2시 청년'들이 '청년'의 스피커를 독점하고 실력에 비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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